KRICT 나르샤 I
* 나르샤는 ‘날아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향해
21세기의 대사건 코로나 사태가 서서히 엔데믹 단계로 향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라는 인류의 노력에 오미크론 변이라는 최근의 변화가 더해진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사상초유의 팬데믹은 인류의 의식 저변에 지우기 힘든 큰 자국을 남겼습니다.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간극처럼 앞으로의 세계는 모든 부문에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일 게 분명합니다. 물론 한층 진일보한 위생관념과 감염병 대응전략처럼 긍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당면한 위협에서 벗어나려 사투를 거듭했던 3년여의 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제 폭풍이 지나간 뒤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자문해봐야 할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남긴 과제들
높은 전파력으로 사실상 대규모 감염을 차단하는 게 어려워진 오미크론에 이어 계속해서 새로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들의 등장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유행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사실상 종식에 가까운 일상 회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존스홉킨스 코로나 데이터 센터 등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4억 5천만 명, 사망자는 6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개월 간 오미크론 변이가 대세를 이루며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감염력을 올리고 중증화율은 낮아지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4월 7% 넘게 치솟았던 전 세계 평균 치사율은 현재 1% 중반대로 낮아졌습니다.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일부 국가의 사망률은 여전히 평균을 웃돌고 있지만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망자는 극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약 백만 명의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미국의 경우 1.2%, 일본은 0.4%, 한국은 0.1%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미크론이 유행하며 하루 수십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백신 접종률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의료체계를 바탕으로 위중증과 사망자 비율은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이에 주목해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외신들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엔데믹(풍토병) 전환 선언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코로나 이후의 세계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종식, 혹은 완전 종식에 실패해도 계절독감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안정화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대유행은 경제와 산업, 사회와 문화 모두에서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 인류가 신체 혹은 심리의 어떤 형태로든 여파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자들은 이런 대규모 변화가 인류의 역사를 기원전(BC)과 기원후(AD)처럼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누게 될 것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사태의 파급효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제는 ‘비대면’입니다. 거리두기와 국경봉쇄 같은 이동의 제한으로 외출 인구와 여행 수요가 급감하며 화상회의와 온라인쇼핑, 원격의료 등의 비대면 디지털 경제가 확산됐습니다. 반대로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받은 실물 매장과 시설 중심의 서비스 산업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직접대면 방식의 교류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며 고립감과 우울감 같은 ‘코로나 블루’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성장기를 보낸 유아들의 경우 장기간의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표정’이라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의 표현과 이해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리란 우려도 존재합니다. 집단발병에 노출되는 사례가 높았던 집단과 커뮤니티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과 경계가 사회적 차별 의식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반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장밋빛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낙관론을 펼치는 이들의 근거는 코로나19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망자가 많았던 1918년의 스페인 독감 대유행입니다. 최대 10%의 사망률로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는 스페인 독감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곧 일상을 회복했고 억눌린 욕구들이 분출되며 1920년대 대중문화와 경제 발전의 대호황기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공진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에는 과거의 팬데믹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몰라보게 발전한 과학기술과 방역능력에 대한 신뢰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끊임 없이 바이러스로 큰 고통에 시달려 왔지만 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투쟁하는 가운데 늘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1980년 WHO가 완전 퇴치를 선언한 천연두를 제외하면 인류가 그간 겪은 흑사병,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등은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라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대유행을 경험하며 방역과 치료에 대한 지식과 데이터를 충분히 쌓아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마비시키지 않고도 쉽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RNA 바이러스로 여전히 전파와 변이, 재감염을 반복하며 인류를 따라다니는 엔데믹 ‘인플루엔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9년의 인플루 엔자 유행은코로나 사태만큼 심각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세계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치료제인 타미플루 개발과 인플루엔자 자체의 독성 약화로 이제 누구도 좀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계절 독감이 됐습니다.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는 최근 <신의 화살>이란 책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전망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의학, 생물학, 유전학, 데이터과학에서부터 사회학과 공중보건학까지 과학지식과 인문학적 통찰력을 동시에 지닌 석학으로 다수의 국제 공중보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해왔습니다.
강력하고 조직적인 대응체계
2009년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에도 비관론과 낙관론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시각으로 이후의 세계를 정교하게 분석했던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던진 복잡한 의미, 더불어 이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서도 모두가 궁금해 하는 예측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가 제시하는 인류 사회와 구성원들의 나아갈 방향입니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이번 팬데믹을 잘 마무리한다고 해도 일종의 예행연습이었을 뿐, 더 거대한 지구적 재앙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처리해야 할 근본적인 조치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강력하고 조직적인 국가 행위’의 필요성입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을 통해 국가 기관의 대처능력과 효율성이 방역 달성의 필수 요건이 된 만큼 앞으로 정부 기구의 역할 자체가 더욱 커져야 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감염병 유행이 심화될수록 시민들이 자신과 타인, 그리고 국가에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과학에 기반을 둔 전문가의 의견 존중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바이러스와 보다 빠르게 타협점을 위해서는 예방과 진단, 치료와 감염확산 방지체계까지 종합적인 바이러스 대응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국제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