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Krict Special

‘Disease-X’ 준비는 기회가 된다

작성자하이브파트너스  조회수2,819 등록일2022-05-12
194-img+09.jpg [503.4 KB]

KRICT 나르샤 II

* 나르샤는 ‘날아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Disease-X'

준비는 기회가된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8년.

다가올 팬데믹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던

이 해에 세계 바이오 업계에는

훗날 코로나 사태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사건들이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2018년의 mRNA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 ‘질병-X(Disease-X)’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합니다. 사스(2003), H1N1조류인플루엔자(2009), 메르스(2015), 지카(2016), 에볼라(2018)처럼 정체불명의 병원체들이 출몰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자 근시일 내 대규모 신종 감염병의 출현 가능성을 경고하며 미지의 바이러스와 세균성 질환에 대한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같은 해 미국 주식시장 나스닥에 한 바이오테크놀러지 기업이 상장됩니다.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해온 mRNA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설립된 ‘모더나’입니다. DNA 전사 과정에서 형성되는 mRNA를 의약품으로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는 30여 년 전부터 의과학계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의 미래 가치를 알아보고 중장기 투자를 선택한 나라는 전통적으로 공중보건에 관한 기초연구에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뿐이었습니다. 2013년 미국 정부는 군사기술뿐만 아니라 인터넷, GPS, 클라우드, 음성인식기술 등의 획기적인 기술개발로 유명한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통해 모더나에 대한 지원을 결정합니다. 당시 모더나는 직원이 단 3명뿐이던 무명의 회사였지요.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도 2018년에 mRNA 기술에 베팅을 합니다. 터키 이민자 출신의 의사과학자 우구르 사힌·외즐렘 튀레지 부부가 세운 독일 벤처기업 바이오 엔테크와 기술제휴를 맺은 것입니다. 화이자는 원래 이들이 연구하는 mRNA 기술로 독감백신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잭팟이 터진것입니다.

 

위기가 만드는 기회

 

위기는 해결과정에서 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합니다. 3년여의 팬데믹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mRNA 기술은 혁신적인 기술로 칭송받았지만 성공 능성이 불투명해 각국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수십 년 전부터 꾸준히 관련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은 국가와 기업들은 코로나가 발생하자 빛의 속도로 백신을 개발했고, 독점적인 지위와 발언권은 물론 향후 좀처럼 쉽게 마르지 않을 새로운 부의 원천까지 확보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상조차 힘들었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극적으로 단축시키며 진가를 발휘한 mRNA기술은 향후 감염병 백신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 예방 및 치료 영역에서 주류의 전략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모더나, 화이자 등 mRNA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기업과 연구소들에는 암, HIV,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등 수많은 감염병과 만성질환 관련 과제들이 폭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mRNA 백신의 성공은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의 출범으로도 이어졌습니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지원 하고 그 혜택이 민간 영역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DARPA의 철학과 연구개발 전략을 보건의료 분야에도 접목한다는 취지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올 한 해 약 7조 원 이상의 예산을 이곳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미국의 ARPA-H를 벤치마킹하려는 독일, 일본, 영국, 중국 등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좁혀지지 않는 격차

우리나라 역시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와 건강수요의 증가 추세에 따라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 확대해왔습니다.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 헬스를 미래 먹거리인 ‘빅(Big)3’ 중 하나로 선정해 수출 500억 달러, 신규 일자리 30만 명을 창출하겠다는 비전의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2019)도 수립한 바 있지요.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며 감염병 대응 연구개발에도 중점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2020년 1,700억 원이던 관련 예산은 2022년 3배인 5,100억 원까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mRNA 백신과 치료제 같은 핵심기술 개발에서 역량과 경험 모두 부족한 상황 속에 우리나라의 신·변종 감염병 대응능력은 주요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확인됐듯이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외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취약한 감염병 대응 역량에는 수익 창출의 어려움으로 산업계 참여가 미진했던 국내 바이오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감염병 중심의 연구개발이 주종을 이루다보니 mRNA와 같은 원천기술의 선제적 확보와 직접적인 개발 노하우 축적은 미진했던 것입니다.

 

생명 보건의료 분야 기술수준 및 기술격차 / 출처: KISTEP, 2020년 기술수준평가 보고서

 

한국형 ARPA-H를 향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내 감염병 R&D의 최상위 계획인 ‘제3차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기술개발 추진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기초·기전 연구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돼온 감염병 연구개발 역량을 국가 차원에서 한 곳에 집적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국내 감염병 연구개발 생태계의 협업과 고도화, 과학적 증거 기반의 미래 수요 예측과 기획·조정, R&D 중개전략 수립과 성과 사업화, 규제개선 및 국제협력까지 국가 감염병 대응체계 전반을 통합적으로 지원·관리할 컨트롤타워의 구축을 시도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한국형 ARPA-H’인 셈이지요.

 

한국화학연구원 역시 과학기술 중심의 통합 연구개발전략 수립과 국내외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미래 감염병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화학연은 감염병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던 1980년대 말부터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 연구를 중심으로 국내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에 기여해온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40여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감염병 R&D 역량과 인프라를 구축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대응 역량을 보유한 감염병 전문연구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는데요. 국내 신변종 바이러스 대응 연구를 선도하는 CEVI융합연구단, 감염병 신속대응을 위한 항바이러스 치료제 라이브러리 및 약효평가 플랫폼 기술을 개발 중인 감염병제어기술연구단 등의 전문연구조직을 통해 다가올 미래국가위협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초원천 기술 개발 및 상용화 연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한국화학연구원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감염병 정책 수립에 필수적인 정보 분석과 기획 역량 확보를 위해 원내에 ‘감염병 기술전략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향후 국가 감염병 대응 전략의 싱크탱크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찾아올 질병-X에 대한 국가적 대응능력 향상에 보다 확실한 지렛대 역할을 하기 위해 연구소 내외의 관련 역량을 총결집하고 있는 것이지요. 3년여의 팬데믹 터널 끝에 비로소 만나게 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 환희의 축제에 앞서 다시 한 번 미래를 준비 중인 화학연의 발걸음이 보다 현명한 위기극복과 기회창출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