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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Special

‘신세기 프로메테우스’ 화학연의 에너지 소재기술

작성자  조회수3,109 등록일2023-09-04
신세기 프로메테우스.png [956.4 KB]

KRICT 스페셜2

'신세기 프로메테우스'
화학연의 에너지 소재기술

 

화석연료의 대체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전 세계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원자력 발전의 확대입니다. 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걸림돌입니다. 이에 따라 보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류 난제 해결을 향한 모험

 

태양에너지

천재의 대명사 아인슈타인은 1905년 상대성 이론 발표 후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이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10년이 넘도록 만년 후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921년 마침내 그에게 노벨상을 안긴 업적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금속에 빛을 쬐면 전류가 흐른다는 ‘광전효과’ 덕분이었지요. 오늘날 재생에너지의 상징과도 태양전지 개발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1954년 미국 벨연구소에서 처음 상용화된 태양전지는 1세대 실리콘, 2세대 박막형 태양전지로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날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의 대표주자로 올라섰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의 위협과 화석연료 고갈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는 매년 3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결정질 실리콘, 박막계 태양전지는 제작에 수천 도의 고온 제조공정이 필요해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모두 많습니다. 설치와 폐기 시의 환경부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 수준의 광전변환 효율 역시 내내 제자리걸음입니다.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갈등 속에 전 세계 생산량의 대부분이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다는 것도 불안요소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21세기 세계 태양광 발전 산업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정구조에 따른 다양한 물성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계의 흥미로운 연구주제였던 페로브스카이트는 2009년 고유의 반도체 특성으로 기존의 비정질 실리콘·박막계 태양전지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지며 단숨에 세계 태양전지 연구개발의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화학연은 현재 전 세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효율이 높은 무기 태양전지와 유연하고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유기 태양전지의 장점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개발에 연구력을 집중한 화학연 연구진은 2018년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유기 반도체와 무기 광흡수체 나노 구조의 장점을 융합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새로운 정공수송 소재 개발 논문을 게재합니다.

나아가 2021년에는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25%를 뛰어넘어 1세대 실리콘 태양전지의 최고효율과 맞먹는 25.2%의 효율을 달성하는 연구 성과로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2023년 올해 화학연 연구진은 재료 또는 공정에 원하는 효과를 주기 위해 첨가하는신규 도펀트를 개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200㎠ 이상 대면적에서 18.24%의 세계 최고 수준 효율을 기록했습니다.

화학연의 태양전지 연구가 세계를 주도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수한 성능의 원천소재뿐만 아니라 상용화의 열쇠인 양산기술 개발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천소재와 양산기술의 유기적인 연계는 간헐적인 에너지 생산과 수급 불균형이란 태양광 발전의 약점을 해결할 중요한 혁신의 도구들을 한 손에 쥘 수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대면적화 기술, 대량생산 기술, 적층물질의 안정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 연구진은 원천소재의 효율 향상과 단위소자 기반의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모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여러 가지 물질을 적층하는 데서 오는 불안정성을 해결할 안정화 기술과 더불어 페로브스카이트 전 단계의 물질들을 하나로 조합해 간편하게 기성품으로 제작할 수 있는 전구물질 제조기술과 관련 장비 개발을 통해 국내 산업계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 가능성을 차근차근 높여가고 있는 중입니다.

 

 

수소에너지

물과 유기화합물의 형태로 자연 어디에나 존재하는 수소는 태양에너지에 버금가는 차세대 에너지원입니다.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의 유휴 전기로 물을 분해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수소를 만드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탄소중립 의무 시한과 산업 지형 변화에 맞서 수소에너지 활성화에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수소 생산, 수소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의 효율성 향상, 대용량의 수소를 생산기지에서 실사용 영역까지 쉽고 안전하게 저장·운송하는 기술 등 수소에너지 연구개발 전주기에 걸쳐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툼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수소 연료를 저장했다가 수요에 맞게 전기로 바꿔 공급하는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에너지 생산·저장·활용 사이클의 핵심 연결고리라 할 수 있습니다. 수소차 같은 이동형 수소연료전지와 가정, 도심, 산업단지 등의 고정형 수소연료전지는 그 자체로 작은 발전소이자 공기청정기입니다. 이런 크고 작은 수소연료전지를 통해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면 대형 발전 시설의 건설과 관리에 필요한 비용은 물론 송전 중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전력 손실도 대폭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온교환막’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인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PEMFC)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핵심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세계 선두권의 수소연료전지 생산 기술과 수소전기차 등의 활용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온교환막을 국산화하지 못한 채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은 이온교환막 국산화, 그중에서도 특히 비싼 가격과 제조 과정상의 유독성 중간체 생성 등의 단점이 있는 기존 이온교환막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온교환막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화학연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비과불화탄소계 이오노머’입니다. 비과불화탄소계 이오노머는 기존 이온교환막 대비 5~10배 이상의 높은 이온 선택 특성, 10분의 1 이하의 저렴한 합성 공정, 단량체 구조 및 특성과 합성 디자인의 다각화로 다양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이온교환막 개발이라는 중장기 과제에 착수한 화학연은 약 10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비과불화탄소계 이오노머 설계 기술을 확립한 후 한층 도전적인 행보에 나섭니다. 당시 화학연이 가능성을 탐색 중이던 ‘흐름전지’와 ‘음이온교환막 연료전지’의 새로운 영역에 진입한 것입니다.

흐름전지는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수명과 안정성을 가지고 있고, 용도에 맞게 크기와 용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중대형 ESS의 핵심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또 다른 과제로 부상한 음이온교환막 연료전지(AEMFC)는 양이온 교환막이 적용되는 PEMFC가 고가의 백금 촉매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니켈과 구리 등의 비백금계 촉매를 사용해 연료전지 제조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어 산업계의 관심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연구원은 관련 분야에서 여러 괄목할만한 연구성과를 창출했습니다. 먼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던 비과불화탄소계 이오노머 연구개발이 세계 최초의 레독스 흐름전지용 부분가지형 이온 교환막 개발을 넘어 롤투롤 인쇄 공정 기반의 대면적 연속식 제조기술로 한층 상용화에 가깝게 다가선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록은 AEMFC 부문에서도 탄생했습니다. 화학연이 국산화에 성공한 AEMFC의 핵심소재 음이온교환막과 전극 바인더의 성능이 기존 상용소재보다 3배나 더 높은 이온교환능과 안정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같은 성과들을 기반으로 화학연은 비과불화탄소계 이오노머 원천기술을 미래형 에너지 저장·변환 장치 등으로 확대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2020년 에너지 분야 국제 저널의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고출력 에너지 소자용 이오노머 3D 프린팅 기술, 이어 2023년 다시 한 번 국제 저널의 표지를 장식한 가지사슬 구조의 친환경 수전해용 이온 교환막 기술이 대표적입니다.

화학연은 현재 수소연료전지와 흐름전지, 수전해, 재생에너지 등 미래 에너지 산업의 높은 연계성과 함께 미지의 유동성에도 모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Power to X’ 기술 개발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이오노머·전극 접합체, 고안정성 단위셀, 독립형 에너지 변환·저장 플랫폼 기술 등이 그것입니다.

 

이차전지

전기의 재사용을 가능하게 한 ‘이차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작고 강력해지며 이제 소형가전부터 전기자동차까지 배터리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 만큼 현대 사회의 필수 동력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화학연은 이차전지 산업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지던 2011년 무렵 차세대 이차전지에 대한 연구개발을 본격화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독주체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고체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 리튬황 배터리와 또 다른 다크호스인 리튬공기 배터리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왔습니다.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화재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를 이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입니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하는 매개체를 고체로 만들어 단락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크게 낮추는 것입니다. 또한 5~10분 정도로 충전 시간이 매우 짧고, 한 번 충전으로 확보할 수 있는 주행거리도 리튬이온배터리보다 훨씬 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체 전해질로 크기와 부피, 무게를 줄이기 쉬운 것도 강점입니다. 배터리 크기가 작아질수록 차량의 편의장비와 활용공간이 더욱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전 세계의 움직임이 더욱 바빠지고 있는 가운데, 화학연은 2022년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의 핵심기술을 국내 소재기업에 이전했습니다. 화학연 연구진이 개발한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에 알려진 전고체 배터리용 고체전해질보다 뛰어난 이온전도도, 유연성의 고분자 고체전해질과 우수한 복합전극 기술이 적용되며 전고체 배터리 고유의 강점인 에너지밀도와 안전성을 한층 더 향상시킨 것입니다.

화학연의 또 다른 주요 연구 분야인 ‘리튬황 배터리’는 황(S)을 양극재로 사용합니다. 황은 부존자원도 풍부한 데다 정유와 철강 산업의 부산물로도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배터리의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밀도가 이론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신흥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황 자체로는 전기전도도가 낮습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은 황 전극의 전기화학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소나노튜브, 그래핀과 같은 전도성 소재와 복합체를 제조하여 용량뿐만 아니라 수명특성까지 늘리는 연구 성과를 낳고 있습니다. 또한 방전 반응 중 형성되는 리튬폴리설파이드의 용해도로 인해 계면 반응 안정화가 어려워 수명특성이 낮아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겔 혹은 고체 고분자 전해질을 도입해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리튬황 배터리 제조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리튬공기 배터리’리는 공기 중의 산소를 이차전지의 양극재로 사용하는 초경량 전지입니다. 산소의 산화·환원 반응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10배 이상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의 차세대 배터리로도 불립니다. 화학연은 리튬공기 배터리 방전반응에서 산소 소모량과 충전반응의 반응 생성가스를 실시간 평가할 수 있는 장비를 국내 최초로 설치해 리튬공기 배터리의 핵심인 전극 및 전해질 소재 개발에 활용하는 한편, 리튬공기 배터리 실시간 분석기술을 국내 주요 자동차 제조사에 성공적으로 이전한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차전지 4대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의 소재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한 연구도 한창입니다. 화학연은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더 소형화하면서도 더 오래, 더 빠르게 사용하고 충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전극 소재 개발에 집중하며 차세대 이차전지의 핵심기술 연구개발 전반에서 고른 성과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하베스팅

화석에너지 이후의 미래 에너지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것은 풍족한 에너지원의 발굴뿐만이 아닙니다. 산업과 일상, 자연에서 알지 못하는 새 낭비되는 에너지들을 회수해 다시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또한 주목해야 할 흐름입니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로 수확할 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는 매우 다양합니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자연의 에너지부터 산업 현장의 폐열, 동식물에서 발생하는 작은 열도 수집과 이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온도차로 전기를 만들거나, 거꾸로 전기를 공급해 가열과 냉각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열전소재’입니다.

현재 열전소재를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냉·온 정수기와 와인쿨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를 사용해 발열과 냉각을 일으키는 열전소재와 달리,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열전소재는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연구소와 기업에서는 자동차 엔진과 머플러의 폐열을 이용한 냉난방 시트 등을 비롯해 열전 반도체, 우주항공용 단열·방열 소재, 광학센서 및 무선센서 냉각 장치 등 산업과 기초과학 전반으로 열전소재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한 연구개발이 활발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화학연이 특별히 주목해온 것은 ‘사람의 체온’을 이용한 열전소재입니다. 평균 36.2~37.5℃인 체온과 외기의 온도 차이를 이용하면 최대 700W까지 전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 작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5W 미만임을 감안하면 사람의 체온을 이용하는 열전소재로 얼마나 많은 웨어러블 기기의 전력을 충당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2014년부터 유기소재를 이용해 사람의 체온을 전기로 변환하는 유기열전소자 개발을 추진해온 화학연의 연구개발 목표는 ‘고효율 열전소자’, ‘자유로운 형상 구현’ 그리고 상용화에 필수적인 ‘대면적화’를 위한 원천기술 확보라는 3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 3년간의 길지 않은 시간 만에 첫 번째 성과를 내놓았습니다. 유기 고분자 소재와 카본나노튜브를 복합화한 유연 열전소재를 개발한 것입니다. 이 혁신적인 열전소재 원천기술은 계속되는 연구개발을 통해 고출력 수직열전모듈 제작과 120 ㎼의 열전파워출력 시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흑린을 이용한 새로운 열전소재 개발도 이어졌습니다. ‘포스포린’으로도 불리는 2차원 흑린은 지구상의 풍부한 원소인 인(P)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존에 주로 연구되던 열전소재들과 달리 고갈 우려가 없고 인체에도 무해합니다. 하지만 흑린 자체만으로는 공기 중에서 쉽게 산화되어 대기 중 안정성이 떨어지고 전기전도도 역시 낮아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화학연은 흑린 덩어리를 얇은 층의 판으로 떼어낸 후 표면에 금 나노입자를 결합시켜 공기 중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전기전도도를 기존 흑린보다 약 6만 배 이상 향상시킨 흑린 열전소재를 개발했습니다. 또한 이 새로운 흑린 소재를 고무 기판 내의 구멍에 떨어뜨리는 잉크젯 프린팅 형태로 인쇄하는 간단하고 저렴한 제조 방식을 통해 열전소자로 구현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새로운 유기열전 소재와 공정, 소자의 핵심기술 개발에서 거듭 주목할 만한 연구 역량을 드러낸 화학연은 시간이 갈수록 한층 더 상용화에 가까운 기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탄생한 ‘스펀지형 유연 열전소재 탄소나노튜브 폼’이 대표적입니다. 이 열전소재는 낮은 열전도도와 함께 스펀지처럼 자유자재로 휘어져 신체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비롯해 경량화가 요구되는 자동차, 우주항공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이 해에는 앞서 120 ㎼의 열전파워출력을 시연했던 고출력 수직열전모듈 제작 기술이 135 ㎼의 고집적 접합형 수직열전모듈 제조법으로 발전하며 다시 한 번 KRICT 혁신기술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화학연 연구진은 2020년, 또 한 번 새로운 유기열전소재 개발에 성공하며 국제적으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강력한 유기열전소재 후보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던 고분자 ‘폴리티오펜’의 열전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분자 소재는 전기가 잘 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폴리티오펜이라는 특정 고분자는 다른 물질을 도핑하면 열전 성능이 향상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해졌지만 일주일만 지나도 열전성능이 80% 이상 떨어진다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공기 중의 산소와 수분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 연구진은 폴리티오펜 소재 위에 소량의 염화금 용액을 도포해 열전성능을 높이는 염화금 이온과 열전성능 유지에 도움이 되는 금 나노입자가 생성되는 독특한 고분자 결정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폴리티오펜 열전소재는 공기 중에서 3주 이상 장시간 열전성능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화학연이 새로 개발한 폴리티오펜 열전소재는 신문을 인쇄하듯 찍어내는 프린팅 공정으로 상온에서 간단하고 저렴하게 제작하는 방식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현재 화학연은 고인성·고효율의 대면적 유연열전모듈 제조기술을 개발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웨어러블 헬스케어 시장에서 다양한 센서와 스마트 디바이스의 자가발전 전원으로 응용될 수 있는 자유형상 열전소자를 완성하겠다는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