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스페셜
"한 방에 완치!" 한국 첫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향해
57억, 46억, 41억, 39억, 37억 원….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들을 1위부터 5위까지 순서대로 나열한 것입니다. 억 소리 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 1회 투여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상적혈구빈혈, 부신백질이영양증, 베타지중해성 빈혈, 렙틴결핍증 같이 일반인은 평생 한 번 들어보기도 힘든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련하고픈 가격일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치료만으로 완치가 가능한 개인맞춤형 첨단의약품 즉 ‘유전자·세포치료제’이기 때문이지요.
Chapter 01
‘일발필중’ 희귀질환 치료의 새 패러다임
유전자·세포치료(Gene and Cell therapy)는 유전자 변형 세포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입니다.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기반으로 정상 유전자나 치료 유전자를 환자의 세포 안에 주입해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질병을 고치는 방법입니다. 세포 치료는 일반적으로 줄기 세포처럼 환자나 기증자의 생체 세포를 활용해 세포의 생물학적 특성을 변화시킨 뒤 손상된 조직이나 질병에 걸린 조직을 대체하거나 회복시키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현재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속속 승인이 본격화되고 있는 유전자·세포치료제는 기존 의약학 기술로 해결하지 못했던 질환 영역, 특히 적게는 수만 명부터 많게는 수백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의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에 따르면, 전 세계 유전자·세포 치료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이미 163억 3000만 달러(한화 약 22조 원)를 돌파한 데 이어 2026년에는 555억 9000만 달러(약 74조 원)로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폭발적인 성장기를 앞둔 유전자 치료제는 현재까지 약 15개 의약품이 미 FDA의 승인을 받아 전 세계에 판매가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국내에서 개발된 유전자·세포 치료제는 아직 전무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6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병원, 대학, 제약사까지 국내의 첨단바이오 역량을 총결집하게 될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만큼 우리나라 역시 머잖아 첫 국산 유전자 치료제 탄생의 순간을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특히 참여기관 중 하나인 화학연의 선도적인 유전자 치료제 연구 역량이 이 같은 자신감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은 화학연, 생명공학연구원 등 출연연 고유의 연구역량을 한 데 모으기 위해 시작된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중 하나입니다. 그간 역동적인 연구생태계 조성의 걸림돌로 지적되어 온 출연연 간 칸막이 제거는 물론 산업계, 학계, 병원과의 협력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융·복합 연구를 통해 이차전지, 소형모듈원자로, 초거대 계산 반도체, 첨단 바이오 같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 대형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 가운데 유전자·세포치료제, 인공적으로 유전체와 세포를 합성하는 합성생물학, mRNA로 대표되는 신속한 백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헬스데이터 분석·활용 등을 포괄하는 첨단 바이오 분야를 특히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바이오산업과 달리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절대 강자가 없는 미개척지란 점입니다. 우리나라가 기술 혁신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세계시장을 견인하는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Chapter 02
화학연이 주도하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올해 6월 출범한 유전자·세포치료제 전문연구단은 주관기관(생명공학연구원)과 5개 참여기관(화학연·안전성평가연구소·표준과학연구원·전자통신연구원·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힘을 합쳐 2029년 첫 국산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융합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출연연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임상과 생산을 위해 국내 학계와 산업계, 병원은 물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까지 국제공동연구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이 주력하고 있는 핵심 목표는 유전성 희귀질환인 ‘척수소뇌운동실조증(Spinocerebellar Ataxia, SCA)’ 치료제의 개발입니다. ‘Ataxia(아탁시아)’로도 불리는 운동실조소증은 보행과 운동, 호흡 같은 신체 움직임을 어렵게 하는 희귀질환입니다. 장애 부위에 따라 척수성, 소뇌성, 대뇌성, 미로성 실조증 등으로도 나뉘는데요. 척수소뇌운동실조증은 유전성 질환으로서 소뇌와 척수의 퇴화로 인해 운동 기능과 균형이 점차적으로 악화되어, 대부분 호흡기계의 합병증 및 음식물 섭취의 어려움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 현재까지도 없는 상황입니다.
화학연에서는 2019년 미국 FDA 희귀의약품(췌장암)으로 지정받은 HDAC Inhibitor 표적 항암제 “Ivaltinostat”를 개발한 암 치료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저분자신약 개발의 전문가인 정희정 박사(희귀질환치료기술연구센터)를 중심으로 17명의 연구원들이 척소뇌운동실조증 완치를 위한 ASO 기반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ASO(Anti sense Oligonucleotide)는 유전 질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를 정확하게 타겟팅하여 치료할 수 있는 맞춤형 치료법으로서 기존약물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질환의 혁신적인 치료법입니다.
정 박사는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선정에 앞서 이미 6년 간 생명연, 안전성평가연구소와 함께 유전성 희귀질환 유전자치료제 연구에 힘써 왔다”며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춘 핵심기관들에 더해 신약 평가와 응용을 담당할 출연연들까지 가세한 만큼 융합연구의 효과가 보다 확실히 드러날 것”이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화학연은 국내에서 신약 개발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던 1980년대부터 항암제·항생제·심혈관 및 바이러스 치료제와 감염병 백신 등의 개발을 주도해 왔습니다. 이 같은 오랜 연구개발 역량에 힘입어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함으로써 신규의약품 연구에서도 속속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선보여 왔는데요. 화학연의 역량과 경험이 한국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향한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의 행보에도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