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
KRICT 아리아리
* 아리아리는 ‘어려워도 함께 헤쳐가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대전·울산·전남 탄소중립
트라이앵글이 뜬다
지난해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이른바 ‘COP26’이 개최됐습니다.
이 기간 중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12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COP26 특별정상회의도 함께 열렸는데요.
한국은 이 자리에서 ‘2050 탄소중립’의 중간 기착지인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더 빨라진 탄소중립 시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새롭게 제시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기존 안인 26.3%보다 13.7%p, 작년 8월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서 규정한 하한선보다도 5%p가 상향 조정된 것이지요.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9년간 연평균 4.17%의 매우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져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1.98%, 미국의 2.81%, 일본의 3.56%보다도 높은 수준이지요.
NDC는 에너지, 산업, 농업, 산림, 쓰레기 등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입니다. 정부는 이번 NDC의 상향과 함께 부문별 감축목표 역시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발전에서는 2030년까지 44.4%, 건물에서는 32.8%, 수송 부문에서는 37.8%, 특성상 온실가스 저감이 쉽지 않은 산업 부문에서도 14.5%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국정모니터링시스템인 ‘e-나라지표’에 따르면, 온실가스 중에서도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이산화탄소(CO2)는 우리나라가 배출하는 국가온실가스의 91.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주로 화석연료의 연소와 추출, 처리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글래스고의 COP26에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탄발전의 중단을 놓고 막판까지 극심한 진통이 거듭된 것도 이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석탄발전을 2030년 절반으로 줄인 후 2050년에는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원천기술에서 혁신기술로
산업 부문에서는 우리 경제의 중추인 철강, 석유화학, 정유산업의 대대적인 기술혁신이 불가피합니다. 관련 산업계도 진작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하며 온실가스 저감 대책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데요. 현존하는 방법들로는 한계가 있어, 보다 효과적인 온실가스 배출 저감 기술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자칫 멀쩡한 공장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산업 부문만 놓고 봤을 때 철강 산업은 석탄발전(37.3%)다음으로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19.2%)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철강의 주원료인 철광석은 산소와 결합한 산화철의 형태로 광산에서 채굴됩니다. 이를 순수한 철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산화철에서 산소를 떼 내야 하는데요. 여기에 석탄을 가공해서 만드는 순수한 탄소 덩어리 코크스를 이용합니다. 산화철의 산소가 코크스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되도록 하고 순수한 철만 남기는 것이지요. 또한 철광석이 녹을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하는데 이때 주로 쓰는 연료가 석탄입니다. 이런 일련의 제철 과정에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저감이 철강업계의 큰 숙제입니다. 석유화학과 정유 업계의 고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업계 전반의 기초 화학원료와 수송에너지를 제공하는 석유화학·정유 부문은 특성상 고온·고압의 에너지 집약산업입니다. 따라서 제품 생산과 가공, 부산물 소각 등의 단계에 서 많은 온실가스가 발생되지요.
이에 따라 지난 40여 년간 국내 화학산업의 발전을 견인해온 한국화학연구원의 새로운 역할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학연은 이미 전 세계 온실가스 연구의 여명기인 1990년대부터 이산화탄소의 저감과 자원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주요 탄소 배출원인 화석연료 부생가스로부터 대기오염물질을 줄이는 동시에 이를 다시 청정연료와 산업용 원료로 재활용하는 일석이조의 복합적인 자원순환 기술이지요.
이를 통해 화학연은 그간 발전소와 산업단지 등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포집·저장해 휘발유, 나프타, 메탄올, 에틸렌, 올레핀, 프로필렌 카보네이트, 유기산 등의 유용한 화합물로 전환하는 혁신기술들을 탄생시켜 왔는데요. 탄소중립의 시계가 빨라지며 화학연 원천기술들의 신속한 상용화 역시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 화학산업의 쌍두마차
이런 가운데 지난해 화학연 ‘전남(여수)지역조직’이 첫발을 떼며 국내 화학 산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화학연과 전라남도, 여수시가 화학 분야 국내 유일의 R&D 실증 전문기관 설치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인데요. 세 기관은 탄소중립의 실현과 화학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여수화학산업단지에 가칭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를 조속히 구축할 계획입니다.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는 화학연 등이 국가 R&D로 개발해온 원천기술들의 실증을 통해 탄소중립 화학기술의 빠른 상용화를 지원하게 될 국가 차원의 실증복합시설인데요. 실증센터가 여수에 설치되는 것은 이곳이 한반도 최대의 중공업지대인 울산·포항과 더불어 석유화학, 정유, 철강 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중요한 산업거점이기 때문입니다. 여수는 특히 석유화학 부문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대의 산업단지이기도 합니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심의를 통과하며 설립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는 화학연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는 향후 동북아 최대의 탄소중립기술 상용화 지원 허브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한 삼동지구 2만349㎡ 부지에 들어설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는 석유화학촉매·공정실증센터와, 이산화탄소포집·활용(CCU)실증지원센터의 2개 조직으로 구성될 예정으로, 2030년에는 40여 명의 연구인력이 상주해 탄소중립형 신화학기술 실증양산화 지원과 지역수요 맟춤형 Total solution 제공 등(연구개발과 기업 실증지원 등)의 업무를수행하게 될 예정인데요. 화학연은 2025년까지 283억 원을 들여 석유화학촉매실증센터를 구축하는 ‘석유화학산업 고도화를 위한 실증규모의 촉매제조 테스트베드 구축사업’에 선정됐습니다. 또한, CCU분야 2050 탄소중립 대응 및 기업 맞춤형 소재·공정 기술 개발 및 기업지원 등을 수행하게 될 CCU 실증지원센터 구축사업이 정부 예산에 최종 반영되며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 구축 및 운영 재원 확보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학연은 2012년 울산에 정밀·바이오화학연구본부를 설치한 데 이어 한국 화학산업의 쌍두마차 격인 여수에서도 탄소중립화학공정실증센터의 문을 열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 대한민국 탄소중립의 허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대전, 울산, 여수의 삼각편대를 통해 기초연구부터 실증까지 탄소중립 기술의 실현 전 과정을 이끄는 전진기지가 된 셈입니다. 화학연의 광폭 행보가 갈 길 바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여정에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