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아리아리
* 아리아리는 ‘어려워도 함께 헤쳐가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글로벌 신냉전 속
화학기술 주권 확보의 길
최근의 국제 정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미·중 갈등의 핵심은 과학기술입니다.
특히 반도체와 희토류 등의 산업 핵심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기술패권경쟁을 가속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지요.
이런 대립구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중국·러시아와 친서방 국가들의 급속한 결집에 따라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본격화되는 기술동맹
기술이 새로운 패권경쟁의 출발점이자 승패를 가름할 열쇠가 되며 안보와 경제처럼 과학기술의 블록화 경향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우호적인 국가들 간에만 첨단기술을 공유하는 기술동맹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총력전 양상의 세력 다툼 속에서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가 주도권과 협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선도국들이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의 확보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 EU, 일본 등이 국가안보와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 확보,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요소들의 통합적 관점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공통 분야는 대부분 인공지능, 양자, 에너지, 바이오, 디지털 인프라, 로봇,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으로 압축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주도권 확보가 필요한 국가생존기술들의 집중적인 육성과 함께 감염병, 미세먼지, 저출산, 고령화, 탄소중립 등의 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해 관련 특별법 제정과 국가과학기술체계의 혁신을 서두르고 있는데요. 나라 안팎의 생존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이들 주요 국가전략기술 중 많은 부분은 화학연과도 깊게 연관되어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핵심인 화학소재와 부품, 코로나19 같은 감염병과 고령화 사회 대응에 필수적인 첨단바이오, 태양광·이차전지·수소 등의 미래 에너지, 국민건강과 탄소중립의 열쇠가 될 미세먼지 저감 및 이산화탄소 자원화 기술 등입니다.
위기 통해 다진 연구역량
이 같은 국가적 임무 달성의 중심기관으로서의 화학연의 가치는 지난 몇 년 간 계속된 위기 속에서 이미 그 중요성이 확연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 사태 등은 점점 더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기술패권경쟁의 현실과 관련 연구개발 역량의 내재화 필요성을 피부로 실감하게 한 사건들입니다. 2019년 소부장 수출규제와 2020년 이후의 코로나 펜데믹,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 등 연거푸 발생한 일련의 공급망 위기는 해당 핵심 소재 및 주요 자원 대부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화학연이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연구원의 임무와 역할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분석과 전망으로 국가 대응책 마련에 힘을 보탠 화학연은 연구소 차원에서도 이미 오랜 기간 이어져온 핵심소재 개발과 대체기술 확보에 더욱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40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꾸준히 한 발 앞선 준비에 힘써온 화학연의 R&D 전략은 지난 3년간의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감염병 문제에 주목하며 대응역량과 인프라를 구축해온 덕분에 코로나 사태 초기 발 빠르게 실시간 분자진단키트를 개발한 데 이어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최초로 백신과 치료제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의약·바이오 분야의 이런 오랜 연구개발 전통은 코로나19와 에이즈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 뿐만 아니라 각종 암과 치매, 심혈관질환 등 고령사회 도래와 함께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퇴행성 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서도 계속해서 우수한 성과들을 탄생시켜 왔습니다.
강화되는 임무와 역할
21세기 국제사회의 최대 화두이자 우리 수출산업 대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탄소중립 기술 역시 화학연이 책임져야 할 중대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화학연은 그간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전지와 고효율 냉난방 촉매, 청정에너지 수소의 경제적인 생산-저장-활용 기술,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물 재활용, 지구 환경 악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미세먼지 저감 및 자원화 기술 등을 통해 국민건강과 국제적 의무 이행에 큰 힘을 보태고 있는데요.
이와 함께 화학연이 추진하고 있는 연구개발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AI·빅데이터 등의 지능형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한 연구성과 및 기술개발 역량의 디지털 전환입니다. 화학연이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의 공유와 확산을 통해 국가의 생존기술과 연계된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산·학·연 전반의 실질적인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친환경 화학공정 고부가가치 화학소재 신약소재 화합물 정밀·바이오화학소재 등의 화학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에도 여념이 없습니다.
화학 분야 국내 유일의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40년 넘게 대한민국 화학기술 발전의 중심 역할을 해온 화학연은 향후 기술패권경쟁이라는 범국가적 현안과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그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 역시 기술 주권의 확보라는 본연의 국가임무 달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선택과 집중, 창의와 도전의 연구개발 전략 마련에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