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아리아리
* 아리아리는 ‘어려워도 함께 헤쳐가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피할 수 없다면 되돌려라
올해 서울은 백 년, 이웃나라 일본은 무려 천 년 만에 가장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반기기보다는 우려하는 기사들이 더 눈에 많이 띄었는데요.
때 이른 봄 꽃 소식에도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던 건 기후변화의 위협이 이미 우리의 턱 밑까지 차올랐음을 경고하는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소각하고 매립하면
정부는 탄소중립 선언으로, 기업은 환경 먼저 생각하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으로, 시민들은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으로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움직임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필사적인 노력도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인류의 씀씀이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크게 늘어난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런 우려를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지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7천 톤 가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절반 정도는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소각하면 1톤을 처리할 때 부산물로 9톤의 이산화탄소가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매립을 해도 완전히 분해되려면 5백 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바다로 흘러들어 미세플라스틱으로 우리 식탁에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따라서 기후위기를 막고 살만한 환경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리적인 재활용입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중 많은 양을 차지하는 음식 포장재는 물리적으로 재활용하는 것 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 재질이 혼합되어 있는 플라스틱 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생활의 필수재가 된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혼란이 뒤따를 게 분명합니다.
생분해 비닐에 마스크까지
현재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인류 생존의 큰 위협으로 떠오른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는 플라스틱을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재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지요. 다국적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이런 노력에 따라 2050년경 플라스틱 제품의 60%가 재자원화 및 재활용된 소재로 대체될 것이라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한데요. 이와 관련해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내놓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한국화학연구원입니다. 화학연은 특히 고강도 생분해 플라스틱 개발과 폐플라스틱을 자원화하는 기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들을 거듭 양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자연계에서 100% 분해가 되면서도 낙하산 소재만큼 질긴 고강도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개발해 큰 화제를 모았던 화학연 연구팀이 올해 3월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대표적인 코로나 쓰레기 ‘마스크’의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지요. 화학연 연구진은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으면서 퇴비화 조건에서 한 달 안에 완전히 자연분해가 되는 N95 성능의 신개념 생분해 마스크 필터를 개발했습니다. 시중에서 사용되는 마스크 필터는 보통 정전기 필터로 바이러스나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방식과 플라스틱 섬유 가닥을 빽빽하게 교차시켜 차단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조 됩니다. 따라서 공기 중의 습기나 입김에 노출돼 필터의 정전기 기능이 점점 떨어지거나, 통기성이 부족해 숨쉬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요. 연구팀은 이 두 가지 필터 방식의 단 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표적 생분해 플라스틱인 폴리부틸렌 숙시네이트를 튼튼하게 보완한 다음 가느다란 나노섬유와 마이크로 섬유 형태로 뽑아 부직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연에서 추출한 키토산 나노입자를 코팅해 천연 항균능력까지 더한 마스크 필터를 완성했습니다. 찢어지지 않는 생분해성 비닐봉투와 환경 호르몬 걱정 없 는 고강도·고내열 슈퍼 바이오플라스틱을 개발하며 쌓은 자체 기술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입니다.
친환경 해중합 기술
자연에서 분해되는 플라스틱 개발이 앞으로의 대책이라면 이미 만들어지고 버려져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과거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폐플라스틱 자원화입니다. 사용한 플라스틱을 원료물질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여러 가지 단위 물질을 중합해 만드는 인공 중합체입니다. 따라서 폐플라스틱의 자원화는 중합의 역반응인 해중합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데요. 해중합 기술로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원래의 플라스틱과 동동한 물성을 갖고 있어 다시 새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무리가 없지만 해중합 과정에서 고온의 열이나 유해한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점 등이 큰 문제여서 화학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에서 대부분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PET와 스티로폼입니다. PET는 가볍고 투명한 데다 냄새가 없어 음료수 용기를 비롯해 생활용품, 장난감, 전선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가장 대중적인 플라스틱 소재입니다. 사용량이 많은 만큼 재활용 방법도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는 편인데요. 하지만 유색이나 복합재질의 PET는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또한 해중합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유기물이나 금속 불순물이 포함될 수도 있지요. 이에 따라 한국 화학연구원에서는 PET병을 친환경적으로 분해해 섬유, 화장품과 의약품, 독성이 없는 생분해 플라스틱의 기초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PET 해중합에 주로 사용되던 아세트산 아연 촉매 대신 독성이 낮고 경제적인 촉매를 사용하는 공정 개발이 대표적이지요. 이 기술은 특히 용해도 차이를 이용한 상분리 기술이 적용돼 플라스틱의 기초물질인 단량체 회수가 쉽고 유색의 이물질이 포함된 PET 소재도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국내에서 포장재, 완충재, 단열재 등으로 쓰고 버리는 폐스티로폼은 연간 수만 톤에 이릅니다. 폐스티로폼은 전체 부 피에서 98%가 공기층이고 단 2%만 폴리스타이렌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재활용을 하려면 부피를 확 줄여야 하지요. 기존 재활용 방식에서는 고온의 열이나 톨루엔 같은 유해화학물질을 이용해 부피를 줄이는 과정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발생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연은 상온에서 친환경 용매로 녹여 부피를 줄인 뒤, 다시 친환경 촉매로 스티로폼 기초원료인 스타이렌 모노머(단량체)를 생산하는 공 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