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랩투어
"파타고니아 비켜!"
K-친환경 의류가 간다
우리나라에서만 매일 4천 톤씩 쏟아진다는 헌옷. 누군가 또 입겠지 생각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수거함에 밀어 넣은 이 옷들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지난해 방송대상을 수상한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쉽게 옷을 사들이고 또 쉽게 버려온 국내의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재활용되는 헌 옷은 단 5%. 나머지 95%는 가난한 저개발국들로 수출돼 거대한 쓰레기 무덤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지요.
똑같은 플라스틱이지만
세계적으로 옷 잘 입기로 소문난 한국인의 의류 구매량은 연평균 1인당 68개에 이릅니다. 그만큼 버리는 양도 많습니다. 중고의류 수출액이 미국, 영국,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입니다. 인구수를 놓고 보자면 사실상 1위인 셈인데요. 그렇게 버리는 옷들 중 극히 일부는 구제 샵 등에서 다시 유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컨테이너에 실려 개발도상국으로 향합니다. 최종 도착지 중 한 곳인 아프리카 가나에는 매주 1,500만 벌의 헌 옷이 전 세계로부터 쏟아져 들어와 마구잡이로 소각되거나 강물에 그대로 처박힙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의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합성섬유의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 재질이라는 점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분리수거를 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폐 페트(PET) 병의 80% 정도가 재활용됩니다. 하지만 옷으로 모습을 바꾼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무심합니다. 실제 한강에서 채취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최소 절반이 합성섬유 세탁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지요.
옷을 만드는 염색 과정도 버려지는 헌옷 이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줍니다. 염색과정이 반복되는 섬유·의류산업은 전 세계 물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며 폐수 배출 비중도 그와 맞먹습니다. 또한 고온의 열처리가 반복되는 까닭에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가 섬유·의류산업에서 나온다는 UN 보고서도 있습니다.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류를 생산하는 방글라데시에서는 염색 과정에서 사용된 독성 물질이 그대로 운하와 강물에 버려져 주민들의 삶과 주변 해역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 합성섬유 재활용 기술
(좌) 출처: 파타고니아 홈페이지(patagonia.co.kr) / (우) 해양 미세플라스틱
플라스틱 폐기물 중 투명하고 깨끗한 PET는 상대적으로 선별 수거와 원료 재활용률이 높습니다. 환경에 대한 부담에 따라 재활용 의류 소재 개발이 필요한 섬유산업계도 주로 폐PET 병의 자원 재순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생산되는 재활용 섬유의 99%가 폐 PET병을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친환경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가 대표적이지요.
문제는 지금 현재 버려지고 있는 헌옷, 즉 다양한 재질과 색상이 혼합된 합성섬유를 원료로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국제환경단체들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새로 탄생하는 ‘신상’ 의류는 1,000억 벌. 그중 330억 벌이 한두 번 입거나 뜯지도 않은 상태로 1년 안에 버려진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플라스틱 선순환 기술을 개발해온 한국의 화학연이 최근 다시 한 번 특별한 기술로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화학연에서는 그간 폐플라스틱을 저온에서 합성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기술, 제철소의 부생가스로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기술 등을 개발해 왔는데요. 이번에는 선별과 분리가 어려워 소각 아니면 자연에 그대로 버려져온 유색섬유와 혼방섬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기술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지요.
1876년 창립돼 전 세계 화학계의 할아버지라 불릴 만큼 역사가 깊은 미국화학회(ACS)는 지난 해 12월 ‘지속가능한 화학 및 엔지니어링(Sustainable Chemistry & Engineering)’의 창간 10주년 기념호를 발행했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이 저널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 화학연 조정모 박사팀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합성섬유 폐기물 재활용’ 기술이었습니다. 버려지는 섬유 내 염료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재활용 원료를 효과적으로 분리하고 합성 이전의 원료로 되돌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섬유 폐기물의 재활용을 위해서는 재질별 분류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현재까지는 사람의 수작업, 아니면 원료 비중에 따라 물에 뜨고 가라앉는 정도를 식별하는 방법밖에 없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었지요. 어렵게 분류가 되더라도 이물질이 많아 재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 연구진은 혼합 폐섬유 중에서 오직 ‘폴리에스터(PET)’에만 작용하는 추출제를 개발했습니다. 헌옷들 중에 먼저 색깔이 있는 섬유만 분류한 뒤 연구진이 개발한 생분해성 화합물을 접촉시켜 탈색이 일어나면 폴리에스터 소재라는 것을 쉽게 판별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여기에 사용된 추출제를 회수한 뒤 다시 무색 섬유에 적용하면 이번에는 반대로 폴리에스터에서만 염색이 일어납니다. 색상이 있는 옷과 없는 옷 모두에서 원료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화학적 선별 기술은 오차율이 낮은 데다 기존에 어려웠던 염료 제거까지 가능한 기술인데요. 이에 더해 화학연 연구진은 유색 폐 폴리에스터 섬유와 폐 PET 등을 기존보다 더 낮은 온도(200→150℃)에서 원료 구조나 형태에 상관없이 2시간 내에 빠르게 분해해 고부가 단량체로 전환하는 ‘저온 콜라이콜리시스 반응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이를 앞서의 선별 기술과 연계하면 반응 및 정제 과정과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친환경’과 ‘경제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것이지요.
화학연이 탄생시킨 이 세계 최초의 합성섬유 재활용 기술은 현재 국내 기업에 이전돼 소재를 분리하고 다시 원료로 합성하는 해중합 실증 플랜트 구축이 한창입니다. 2025년경부터는 본격적인 재생 단량체 생산과 함께 세계시장 수출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국의 혁신적인 합성섬유 폐기물 재활용 기술이 본능적인 미의 추구와 환경 파괴의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 세계 패션 피플 모두에게 건강한 해방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