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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Issue

제2의 천연 에너지 '골드수소'를 캐낸다면

작성자  조회수3,752 등록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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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포커스

 

제2의 천연 에너지

'골드수소'를 캐낸다면

 

 

 

 

세계 곳곳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는 천연수소 매장지 소식이 많은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유럽의 알바니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천연수소 우물이 모습을 드러내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값비싼 비용 대신 땅만 파면 나온다는 천연수소의 활용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실현된다면 탄소배출도 없고 생산비용도 낮은 에너지의 신기원이 열릴 수 있다고 하니

그 잠재력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제의 ‘골드수소’와 화학연의 상용화 관련 기술을 알아봅니다.

 

 

Chapter 01

찾은 폭발사고, 원인이?

 

 

 

올해 2월 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알바니아의 크롬광산에서 발견된 천연수소 샘의 동영상을 관련 기사와 함께 소개했습니다. 깊은 지하에서 보글보글 끊임없이 기포가 올라오는 이 물웅덩이는 샘플 조사 결과 연간 11톤가량의 수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 측정됐습니다. 광산 내 산재한 다른 갱도와 동굴의 천연수소 분출구를 모두 합하면 방출량이 200톤 이상일 거라고도 추정되었는데요.

 

알바니아 북동부 불키저 지역 크롬광산의 갱도 950m 아래 위치한 물웅덩이에서 연구팀이

거품이 일며 수소가스를 뿜어내는 주요 방출점을 전등으로 비추고 있는 모습. (사진=사이언스)

 


탐사를 진행한 프랑스 그로노블알프스대학 연구진이 이 광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2년 이래 세 차례나 발생한 큰 폭발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치명적인 가연성 가스의 정체가 천연수소일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지요. 그간의 상식에 따르면 수소는 대부분 물과 유기화합물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따라서 순수한 수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의 추가적인 산업 공정이 필수였습니다.

현재까지 개발된 수소 생산 방식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크게 3가지의 색깔로 구분됩니다. 석유화학·철강 산업 등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그레이수소, 수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층과 해양에 격리하는 블루수소, 그리고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 등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그린수소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그린수소입니다. 하지만 전기분해 장치나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비용으로 인한 경제성 확보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난제가 많지요. 이에 따라 전 세계 수소 생산량의 90% 이상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의 그레이수소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항공산업에 맞먹는 약 9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Chapter 02

지각 밑 수소가 올라온다고?

 

 

상당수의 과학자와 사업가들은 꽤 오래 전부터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지구 지각 내에 자연적으로 천연수소 매장지가 존재할 가능성을 탐색해왔습니다.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우물을 파던 중 새어나온 정체불명의 가스가 중요한 발단이 되었지요. 물을 찾기 위해 판 108미터 깊이의 시추공에서는 물 대신 바람이 새어 나왔는데 한 인부의 담뱃불에 옮겨 붙으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작업자들이 간신히 불을 끄고 구멍을 막을 때까지 몇 주간에 걸쳐 계속된 반투명색의 불꽃은 연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사업가가 석유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봉인된 구멍을 열고 조사해보니 구멍에서 나오는 기체의 98%가 수소였습니다.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의 우물 시추공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25년이 지난 2012년 수소가 나온다는 게 확인된 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2018년 그 결과를 담은 논문이 발표됐다. 상공에서 원형으로 보이는 지역에 반경에 따라 시추공을 뚫어 발생한 수소 농도를 측정한 그래프. (사진=수소에너지국제저널)

 

이 소식은 그간 천연수소의 존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던 과거의 논문과 조사보고서들이 활발히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주기율표의 아버지 멘델레예프가 1888년 우크라이나의 한 석탄광산을 조사하다가 수소가 새어나온다고 작성한 보고서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해저 산맥의 열수분출구에서 발생하는 수소, 1980년대에도 미국의 석유 시추공에서 검출된 수소에 대한 논문이 있었지요.

석유나 천연가스에만 관심 있던 산업계는 이런 사실을 간과했지만 과학계에서는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천연가스 매장지의 자연적인 발생 경로를 연구했습니다. 여러 가설들 중에 가장 주목받는 이론은 지구의 지질활동이 천연수소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천연수소는 사문석화(serpentinization)*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지각 아래 맨틀의 상부에는 철이 풍부한 감람석이 많은데 이 철 성분이 물과 반응해 사문석이 되는 과정에서 천연수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문석화(serpentinization): 고온에서 물은 철분이 풍부한 사문석 같은 암석과 반응하여 수소를 생성한다.

 

 

땅속 자연수소가 생성되는 세 가지 환경. (자료=사이언스 2023년 2월호)

 

이와 함께 지구 중심의 외핵이나 멘틀에 포함된 수소가 지각판 경계와 단층을 따라 상승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는 작고 가벼운 성질로 암석의 틈을 통해 올라가다가 투과성이 낮은 소금 암석층 아래 고이게 됩니다. 말리의 우물이나 알바니아의 광산 같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 이상이 보고되고 있는 천연수소 누출 현상은 이런 암석층을 우연히 뚫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Chapter 03

21세기 보물지도를 찾아서

<사이언스>의 기사가 나온 직후 알려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미발표 보고서도 천연수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학진흥협회 학술회의에서 일부 내용이 공개된 USGS의 천연가스 관련 보고서는 전 세계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수소의 양을 5조 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수소 소비량인 1억 톤을 기준으로 할 경우 5만 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입니다. 이에 따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등의 외신은 지난 세기의 유전개발 붐 같은 ‘수소 골드러시’가 재현될 수 있다고도 전망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미 미국·호주·캐나다·스페인 등의 여러 스타트업들이 천연수소를 찾아 세계 곳곳에서 시추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매우 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3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이 몰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새로운 에너지 게임 체인저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수소 채굴기업에 9100만 달러를 투자한 빌 게이츠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한국석유공사가 전국 5개 지점의 측정 장치에서 천연수소 발생 사실이 확인돼 정밀 분석 중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이 가운데 대부분의 수소는 현재의 채굴 기술로는 접근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만 추출에 성공해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예상하는 미래 수요량(2070년경 연간 5억 톤)을 수백 년에 걸쳐 충족할 수 있습니다. 수소 에너지 시대의 가장 큰 관건인 친환경 수소 생산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수 있는 것이지요.

 


Chapter 04

채굴해도 옮기지 못하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골드수소’ 소식은 화학연의 관련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땅 속에서 채굴하는 천연수소를 저장하고 사용처까지 운송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연구성과들이 다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매우 낮은 수소는 압축이나 액화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수소연료전지 승용차에는 5킬로그램 용량의 수소탱크가 탑재됩니다. 실내체육관만한 부피의 수소를 승용차의 작은 탱크에 압축해서 싣고 다니려면 천연가스(CNG) 버스의 3배가 넘는 초고압이 필요하지요.

또 수소기체는 희토류와 전이금속에 잘 흡수돼 저장용기와 배관의 부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소연료전지 승용차와 현재 주종을 이루는 수소 저장·운송 기술(수소를 –253℃로 액화해 고압수소탱크로 옮기는 방법)은 카본 소재의 특수 설비가 필요하고 장기 보관도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은 초고압·극저온의 고가 특수 장치 대신 수소를 제3의 안전한 화학물질과 결합시킨 뒤 다시 수소로 전환하는 기술을 활발히 연구해왔습니다.

 

 

2023년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암모니아에서 저비용으로 수소 생산이 가능한 촉매 기술(채호정 박사팀) 연구진.

좌측부터 화학연 화학공정연구본부 김영민 박사, 채호정 박사, Do Quoc Cuong 박사, 김거종 박사.

 

2023년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 100선에 빛나는 ‘암모니아로부터 고효율 수소 생산 촉매 기술’이 대표적입니다. 이 기술은 저장과 운송이 어려운 수소 대신 암모니아를 운반체(carrier)로 활용해 저비용으로 수소를 이송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수소를 포함하고 있는 암모니아(NH3)는 상온·상압에서도 쉽게 액화할 수 있고 먼 거리 이동도 쉽고 안전합니다. 또 이미 많은 산업 분야에서 사용 중이라 기존의 인프라 활용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암모니아에서 수소 원자를 분리해 기체 상태의 분자로 재결합시키는 과정에서 고가의 귀금속 촉매가 필요했는데요. 화학연 연구진이 저렴한 비귀금속 촉매를 사용하면서도 암모니아 분해 공정의 효율은 더욱 높이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개발된 암모니아 분해용 촉매 반응 모식도 및 향상된 암모니아 분해 성능을 나타내는 그림.

(오른쪽 그래프에서 x축은 반응온도를 y축은 암모니아 분해율을 나타냄. 그래프 선이 위쪽으로 위치할수록 암모니아 분해 성능이 우수함.)

화학연은 앞서 2019년에도 독일과 일본의 극소수 연구팀만 보유하고 있던 ‘액상유기물 기반 수소 저장체(LOHC)’의 독자 개발에 성공해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LOHC는 현재 연료로 사용하는 디젤과 유사한 액상화합물로 대용량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장시간 외부 자극에 노출돼도 쉽게 변하지 않아 평범한 드럼통에도 수소 보관이 가능합니다. 화학연이 개발한 이 LOHC는 수소 추출 효율도 독일과 일본의 기술보다 높습니다. 이에 따라 충전소 설치와 수소차 보급 확대의 큰 걸림돌인 고압수소를 대체할 새로운 수소 연료로도 주목을 받으며 저장·운송·활용까지 수소 사이클 전반에 응용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화학공정연구본부 채호정 박사팀 연구진.

 


Chapter 05

무지갯빛 수소 에너지 시대를 향해

 

‘ACS Energy Letters’ 2022년 12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린 화학연의 탄소계 전해질막 이미지.

 

 

화학연은 비단 골드수소의 저장·운송뿐만 아니라 현재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 수소 생산 모델로 각광받는 그린수소의 핵심기술에서도 계속해서 눈에 띄는 연구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는데요. 2022년 12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단체인 미국화학회의 국제학술지(ACS Energy Letters)의 표지논문에 선정된 ‘가지사슬 구조의 전해질막’ 기술은 친환경 수전해 기술의 핵심소재인 전해질막의 성능을 기존보다 80% 넘게 향상시킨 것입니다.

 

이 기술은 특히 흐린 날씨나 바람이 적은 날처럼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떨어질 경우 수소-산소의 과도한 혼입으로 높아질 수 있는 폭발의 위험도 크게 줄였습니다. 튼튼한 엔지니어링 고분자 기반의 가지사슬 구조로 수소 이온의 ‘높은 전도도’와 수소 기체의 ‘낮은 투과율’이라는 수전해 시스템의 양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쾌거였지요.

 

 

이어 두 달 뒤에도 다시 한 번 화학연의 친환경 수전해 관련 기술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세계 최고 성능과 내구성의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전환용 음이온교환막 소재 기술을 개발한 것인데요.

 

개발된 전기화학적 CO2의 CO 전환장치 분리막용 고성능 음이온교환소재 및 이를 이용해 제조한 고품위 분리막.

 

이 새로운 음이온교환막 소재는 이산화탄소를 화학 원료인 일산화탄소로 전환하는 공정뿐만 아니라 친환경 수전해의 핵심기술로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이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 최초의 음이온교환막 수전해 상용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수소 기술 전주기에 걸쳐 고른 활약을 펼치고 있는 화학연의 활약이 그레이, 블루, 그린을 넘어 골드까지 새로운 희망의 색을 더하고 있는 수소 에너지 시대의 현실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