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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Issue

연결과 융합의 힘 '점·접착제'

작성자  조회수4,555 등록일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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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포커스

 

연결과 융합의 힘 '점·접착제'

 

 

가족행사와 야외활동이 많아지는 5월은 자동차 회사들이 앞 다퉈

신차를 소개하는 시기입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이 무렵부터 여름휴가 시즌까지가

연중 최대 성수기라고 하는데요. 소비자들 역시 국산차와 수입차,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까지 한층 다양해지고 있는 선택지 속에

즐거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Chapter 01

탈부착 VS 고착화

 

차량을 고를 때 가장 많이 고려되는 요소는 가격, 연비, 성능, 디자인 등입니다. 이와 함께 꼼꼼한 소비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내외장재나 첨단기능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내구성, 효율성, 안전성을 좌우하는 플랫폼까지 따져보곤 합니다. 이전보다 개선된 형태의 설계인지, 주로 적용되는 소재들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지요. 특히 자동차의 주요 골격을 이루는 강판의 인장강도는 물론 차체 무게는 줄이면서 강성은 더욱 높여주는 ‘구조용 점·접착제’의 사용 여부가 중요한 체크포인트가 되곤 합니다.

일반적인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구조용 점·접착제 사용량이 자동차의 연비나 안전성을 어떻게 개선시킨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힘드실 텐데요. 현재 자동차 회사들의 신차 개발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차체 경량화입니다. 자동차의 무게는 연비부터 배기가스, 가속성능, 제동거리, 조향능력, 차체 수명까지 완성차의 성능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하는 프레임과 구동계, 조향장치, 제동장치, 현가장치, 타이어와 휠까지 주요 부품 전반에 걸쳐 가볍고 튼튼한 복합소재의 사용량을 계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는데요.

 

구조용 점·접착제의 사용량을 늘렸다는 것은 곧 일반적인 철판보다 가벼우면서도 강성이 뛰어난 알루미늄, 마그네슘,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같은 고가의 소재들을 더 많이 적용했음을 뜻합니다. 이런 복합소재들은 용접이나 볼트·너트로 접합할 수 있는 철강재와 달리 다량의 구조용 점·접착제가 필요합니다. 구조용 점·접착제의 사용은 용접할 때 발생하는 고온의 열에 따른 변형과 부식을 피할 수 있어 원자재와 부품의 고유 특성과 신뢰성도 더 잘 유지됩니다. 또한 넓어진 면적의 접합면이 고르게 힘을 받아 차량의 안정성과 내구성도 더 높아지게 되지요.

점착(粘着)은 물, 용제, 열 등이 없어도 저압을 가하는 것만으로 바로 결합강도가 형성되는 성질을 말합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는 점착제는 단시간에 반응이 완료되며 달라붙는 성질의 지속력과 붙였다 뗄 수 있는 박리력을 함께 가지고 있어 스카치테이프, 스티커 라벨, 포스트잇처럼 쉽게 탈부착이 가능한 제품들에 활용되지요.

 

접착(接着)은 두 개의 고체 면이 제3의 물질을 사이에 두고 접합되는 성질입니다. 모든 물체는 아무리 매끄럽게 보여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사실 매우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두 물체를 이어 붙이면 그 사이엔 수많은 틈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틈을 채워주는 것이 접착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틈을 메워 마치 하나의 물체가 된 것처럼 만드는 것이지요. 접착제는 처음에는 액체 상태이지만 완전히 마른 후에는 고체로 경화돼 좀처럼 뗄 수 없는 단단한 결합력을 갖기 때문에 구조재료로 많이 사용됩니다.

 


Chapter 02

국가 주력사업과 점·접착제


중소벤처기업부와 화학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전 세계 점·접착제 시장은 합판, 가구, 토목, 건축, 포장, 제지, 섬유, 피혁, 수송, 전기·전자, 의료, 가정, 기타 공업용 등 일상생활과 산업현장 전반에 걸친 수요 증가로 연평균 5% 내외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자동차·항공기용 점·접착제 시장이 6.7%의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의무 속에 이산화탄소 배출과 에너지 사용량 감축을 위해 경량·방열 복합소재를 적용하는 이동수단이 늘어나며 이에 필요한 점·접착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복합소재들은 용접으로 접합할 수 있는 철강재와 달리 비행기, 자동차 본체와 부품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구조용 점·접착제가 필요합니다. 구조용 점·접착제를 이용한 복합소재 접합은 항공기 분야에서 먼저 시작됐는데요. 비행기 동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알루미늄이 녹는점이 낮아 용접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주로 철강재와 알루미늄의 접합처럼 용접이 어려운 소재들의 결합이나 전장부품의 고정 등 일부에서만 활용되다가 최근 사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점점 강력해지는 환경과 안전규제에 따라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안전성의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접착제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다양한 소재와 미세한 부품들의 정교한 집합체인 ICT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스플레이용 점·접착제인 OCR(투명접착제)과 OCA(투명테이프)가 대표적입니다. 디스플레이는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 패널 위에 터치스크린 패널, 커버 윈도우 등 많은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부품을 쓰는 데 따른 빛 손실과 반사, 정전기, 전자파, 발열과 오염, 수분 침투 등을 막기 위해 더욱 뛰어난 광학적 특성과 점탄성·내구성의 점·접착제 소재와 기술 개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OCA/OCR 사용에 따른 변화 (출처 : 삼성 디스플레이 뉴스룸)


Chapter 03

화학연의 점·접착제 연구개발


화학연은 1980년대부터 국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접착·코팅과 필름형 특수 접착제들의 연구개발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같은 주력산업들의 글로벌 성장세가 확연해지며 세계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수요 맞춤형 점·접착제 개발이 한층 본격화되었는데요.

 

다양한 성과들의 신호탄은 자동차용 고성능 접착제인 강인성 소재 원천기술 개발입니다. 이 기술은 자동차를 비롯해 항공기, 건축자재 조립공정 등에 사용되는 접착성 조성물의 배합과 혼합, 경화를 최적화해 자재를 경량화 하는 동시에 빠른 경화로 전체 조립공정의 생산성까지 크게 향상시킨 기술입니다. 또한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을 발생시키는 용제가 필요 없어 작업자들의 건강과 안전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되는 기술이었지요.

 

곧 이어 탁월한 경화 강도를 자랑하는 스틸-스틸 에폭시계 접착 기술이 개발되었고 유기물 분리공정 기술, 초저가 에폭시 제조 기술, 용접성 개선 접착기술, 고강성 내열 소재 기술, 수지 조성 배합 기술, 자동차 부품 몰딩용 접착소재 기술 등의 연이은 성공과 기술이전이 계속되며 화학연은 국내 접착소재 연구개발과 사업화의 허브로 더욱 탄탄하게 입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에폭시계 접착제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ICT 관련 제품들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만큼 혁신의 속도가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전기차는 물론 수십만 회 이상 접었다 펼 수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대중화됐고 자율주행과 도심항공교통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차세대 모빌리티 환경도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에 따라 화학연 연구진은 기존 점·접착제의 고기능화와 혁신기술 개발을 향한 가속 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으며 한층 혁신적인 연구 성과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Chapter 04

산업혁신과 환경보호의 가교


2020년 화학연은 세계 최초로 광촉매를 이용한 가시광선 경화형 무용제 점착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점착제는 구성 성분에 따라 아크릴계, 고무계, 실리콘계로 구분됩니다. 제조 방법에 따라 용제형, 무용제형, 에멀젼으로 나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친환경적인 무용제형과 에멀젼 아크릴계 점착제는 점착 물성, 투명도, 내산화성이 우수해 자동차, 전기전자, 의료 등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활용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요. 단점은 무용제 아크릴계 점착제의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고에너지의 자외선(UV) 광선이 오존을 발생시키고 에너지도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의 대안으로 태양광이나 LED 환경에서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광촉매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가운데 화학연이 가장 먼저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지요.

BPA계 에폭시를 대체할 지방산 개질 에폭시 제조 기술과 이를 이용한 경화 기술 개발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에폭시는 뛰어난 방수·내압·내기후성과 빠른 경화 속도로 자동차, 전기전자, 건축, 항공우주 등 여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구조용 접착제입니다. 하지만 환경 호르몬 문제를 일으키는 비스페놀A가 다량 포함돼 있고 석유 기반의 경화제를 사용해 인체 독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생물 기반의 지속 가능한 대체 자원으로부터 안전한 에폭시 수지와 경화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어 왔지요.

 

점착제의 재사용 순환시험 모식도

 

 

초고분자 점착제 고분자의 재활용 및 재사용 평가

 

 

지구환경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화학연 연구진의 친환경 점·접착제 개발 노력은 올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붙인 자국도 남지 않고 재활용까지 되는 ‘투명점착 필름’ 개발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점착 소재는 3M 스카치테이프나 라벨테이프 같은 점착 필름, 스마트폰 액정보호 필름처럼 표면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필름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기존의 점착 필름은 끈끈함을 높이기 위해 화학적 가교 구조를 이용합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높은 열에도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워 사용 후 통째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페트병에 붙은 라벨이 재활용 비닐이 아니라 일반 쓰레기로 분류됐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학연 연구진이 개발한 투명 점착피름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연 연구진은 기존의 화학적 가교 구조를 다른 구조로 바꿔보려 시도했습니다. 우선 가시광선을 이용해 재활용이 가능한 점착 소재를 만들었습니다. 이어 점착 필름을 이루는 고분자 사슬의 분자량을 극대화해 잘 엉키게 해서 화학적 가교구조 없이도 기존 점착 필름에 비해 자국이 남지 않는 것은 물론 여러 차례 재가공해도 성능 저하가 거의 없는 만능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요. 덕분에 앞으로는 페트병에서 떼어낸 비닐도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요.

화학연 연구진은 나아가 기존 상용 제품 대비 200% 이상 접착력이 높고 내구성이 좋은 비가교형 점착 소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기용매가 아닌 물에 녹여 재활용하는 궁극의 친환경 점착 필름 소재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21세기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늘 서로 전혀 다른 영역의 연결 지점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융합이 어려운 소재와 기술의 이종접합을 가능하게 해온 점·접착제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공업용 본드, 사무실의 포스트잇부터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에 꼭 필요한 친환경 기술까지, 전통과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기술혁신의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는 화학연의 점·접착제 연구가 더 강력한 연결과 융합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