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Krict Issue

종이보다 얇은 스피커? 신소재 ‘맥신’을 알아보자

작성자  조회수4,573 등록일2024-02-01
03_01.png [446 KB]

KRICT 랩투어

 

종이보다 얇은 스피커?

신소재 ‘맥신’을 알아보자

 

한국화학연구원 박막재료연구센터 X UNIST

 

 

 

화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Advanced Materials)’라는 이름의 과학저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발행되는 세계 정상급의 화학·소재 분야 국제학술지이지요. 작년 11월 이곳에 한국인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결과 한 편이 게재됐습니다. 바로 다재다능한 미래형 첨단 스피커 개발에 관한 내용입니다.

 

 

 

높은 완성도의 마침표 ‘스피커’

 

전기 음향 신호를 음파로 바꿔주는 스피커(Speaker)는 음악, 영상, 드라마, 게임 같은 21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완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장치입니다. 영화관이나 PC방에 갈 때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향 시스템의 시설을 찾는 것도 스피커와 헤드폰 성능이 좌우하는 현장감과 몰입도의 큰 차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구자석과 코일, 진동판, 전기회로 등의 구성요소와 이를 감싸는 인클로저(스피커 박스)의 구조로 이뤄진 스피커는 적잖은 크기 때문에 늘 적절한 공간 배치에 어려움이 따르곤 합니다. 종종 스피커 내부 자석의 강한 자성과 외부 자기장이 스피커는 물론 주변 전자기기에까지 잡음을 일으키곤 하는 것도 골칫거리 중 하나인데요.

 

화학연 박막재료연구센터의 안기석 박사팀에서 합성한 2차원 나노소재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고현협 교수팀의 소재 응용 기술로 공동 개발한 차세대 스피커가 상용화된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들이 개발한 스피커는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기존 제품들과 달리 열에너지로 소리를 만드는 새로운 개념의 열음향 스피커입니다. 스피커에 교류 전류를 흘려보내면 ‘맥신’이라는 첨단 신소재가 가열 냉각되면서 음파를 생성하는 방식이지요. 이러한 온도 변화에 따라 맥신 주변의 공기가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압력이 변화하는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A4 사무용지(0.1mm)의 만분의 일인 1μm(0.001mm) 두께에도 못 미치는 이 초박막 스피커는 모양도 포물선이나 구형으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점착성이 강해 필름처럼 만들어 어느 곳에나 쉽게 붙일 수 있습니다.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소리를 보내는 지향성까지 탁월해 지지대 모양에 따라 360° 전 방향, 혹은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나만의 독점적인 사운드 영역을 만드는 것이 모두 가능하지요. 개인용 음향기기는 물론 극장과 콘서트홀 등의 대규모 음향 설비, 무선 이어폰과 헤드셋의 능동 소음제어(Active Noise Canceling), 유연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구성과 공간 활용성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3차원에서 2차원으로

 

 

S. Park et al, Applied Catalysis B: Environmental. 304, 120989 (2022)

 

 

그렇다면 이 놀라운 초박형 스피커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 맥신(MXene)은 과연 어떤 소재일까요? 맥신은 미국 드렉셀 대학교의 유리 고고치 교수 연구팀이 2011년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의 논문을 통해 처음 보고한 원자 두께 수준의 2차원 나노물질입니다. 맥신은 맥스(MAX)라는 결정성 물질로부터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M이 전이금속을, A는 13족(붕소·알루미늄) 또는 14족(탄소·규소·게르마늄) 원소를, X가 탄소와 질소를 가리킵니다.

 

이 맥스 결정은 층상구조를 가지는데 세라믹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연성이 있어 기계적인 가공이 가능하고 열과 전기 전도성이 우수합니다. 또한 가공을 위해 형태를 변형하면 층상구조가 서로 미끄러지며 박리가 일어나는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에 따라 과거부터 오랜 기간 연구되며 다양한 3차원 구조의 탄화물, 질화물, 탄질화물이 합성되고 있었는데요. 유리 교수팀도 이들의 특성을 연구하던 중 화학적 부식작용으로 불필요한 물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식각(Etching) 공정 과정에서 알루미늄 원자만 녹아 박리되며 그래핀과 유사한 2차원 구조의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맥신의 첫 발견이었지요.

 

 

 

2차원 평면구조를 가지는 맥신(Mxene)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맥신은 2차원 물질 고유의 우수한 특성에 더해 전이금속과 탄소, 질소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수많은 종류의 맥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나아가 뛰어난 전자파 차단과 에너지 저장 능력, 다른 소재와 접촉할 때 전자를 흡수하는 능력, 물리적 변형에도 유지되는 전기 전도성, 지금까지 알려진 물질 중 기체에 대해 가장 민감한 전기화학적 반응, 심지어 물을 정화하고 박테리아의 통과를 막는 등의 다양한 성질들이 속속 발견되며 전 세계의 연구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맥신의 새로운 잠재력

 

화학연은 그간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그래파이트 등 다양한 저차원 나노소재의 고도화에 힘써왔습니다. 특히 저차원 나노소재들이 우수한 전기적·기계적·열적·광학적 물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추출과 특성 제어가 쉽지 않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다른 종의 2차원 물질들을 적층하고 접합해 각각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기능성을 갖게 하는 하이브리드 나노 복합소재 연구에 주력해 왔는데요.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맥신 역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관련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용매에 잘 녹는 맥신의 친수성을 이용해 용액공정으로 가공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끝에 2차원 맥신 소재의 이종원자 도핑, 공용 용매(DES)로 산화 안정성을 확보한 대량생산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맥신 기반 에너지 소자 개발 등 연이어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양산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맥신의 본격적인 상용화에 대비해 새로운 응용 분야 개척에도 큰 힘을 쏟아왔는데요.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맥신의 응용 분야는 전자파 차폐, 전도성 코팅, 이차전지 전극 등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기계적 에너지를 회수하는 마찰전기 발전원, 아주 낮은 농도의 기체들을 감지하는 화학센서, 담수화 및 폐수처리용 분리막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저차원 나노소재들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은 가까운 미래, 제조업 대전환의 서막이 나노기술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에 더욱 힘을 싣고 있는데요. 다재다능한 초박막 스피커 개발로 맥신의 새로운 잠재력을 선보인 화학연-UNIST 공동연구진의 성과가 대한민국 나노 생태계의 또 다른 혁신 신호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