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거대한 버섯구름과 건물이 무너질 만큼 강력한 충격파가 소셜미디어 영상으로 전해지며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재민 수만 30만 명 넘게 발생한 이 초대형 사고의 원인이 창고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 폭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보다 앞서 2015년에는 옆 나라 중국의 톈진항에서도 알 수 없는 위험물질이 폭발해 47명의 소방관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화학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바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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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안전은 국내시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해외의 사례처럼 대형 폭발사고로 번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멀게는 구미 불산 사고부터 최근의 생리대 안전성 논란까지 매년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요. 이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체감상 가장 충격이 큰 사건은 2011년 처음 알려진 뒤 여전히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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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부터 국내 몇몇 병원에서는 원인 모를 폐질환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들이 찾아왔습니다. 특이하게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의료진의 노력에도 증세가 계속 악화되며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쉽게 파악되지 않던 원인은 2011년 정부 조사를 통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17년간 무려 980만 통이 팔려나간 가습기 살균제였지요. 조사 결과 공식 사망자만 88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해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어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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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려진 화학물질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1억 종이 넘습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중 국제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약 4~6만 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빛과 그늘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화학물질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오용 내지 악용될 경우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오남용을 막기 위한 사전예방과 함께 신속한 대응을 위한 안전관리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복합위해성’이 화학안전의 중대한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보통 화학제품은 다양한 물질의 혼합으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단일물질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독성이 여러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현될 가능성이 높지요. 이 같은 혼합독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생산자 책임’의 원칙 아래 기업이 스스로 먼저 화학제품의 안정성을 입증하도록 하며 화학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역시 이런 추세에 발맞춰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화학제품안전법(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 등을 도입하고 있어 새로운 유해물질의 연구와 평가 기술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