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포커스
화학연의 새 혁신 운동장
‘화학소재부품 상생기술협력센터’
화학연의 잔디운동장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48년간 연구원들의 체력단련 장소로, 또 시민들의 각종 모임과 행사 장소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유서 깊은 공간의 퇴장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창조적 파괴 없이 혁신도 없다”는 슘페터의 말처럼, 이곳은 지금 새로운 혁신 운동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건설공사가 한창입니다. 전 세계적인 기술패권 경쟁과 공급망 불안정에 맞서 국내 화학소재·부품 생태계의 상생 협력을 이끌어 갈 ‘화학소재부품 상생기술협력센터’가 그것입니다.
Chapter 01
3자 협력 기술혁신 플랫폼
상생기술협력센터는 화학소재·부품 핵심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화학연과 수요기업, 공급기업이 함께 힘을 모으게 될 3자 협력 플랫폼입니다. 화학연이 쌓아온 핵심기술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연구자와 크고 작은 기업들이 한 데 모여 화학소재·부품 국산화를 추진할 소부장 기술혁신의 새로운 거점 공간이지요.
최근 미·중 간 치열한 대립구도로 상징되는 세계 패권경쟁의 핵심은 과학기술입니다. 특히 21세기 첨단산업 전반의 핵심자원인 반도체와 화학소재 등을 둘러싼 갈등이 기술 패권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19년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를 무기화한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계기로 수입에 의존해 온 소재·부품 국산화와 공급망 안정화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한 바 있습니다.
일본수출규제 사태 발발 이후 화학연은 국가적인 대응책 마련에 힘을 보태는 한편, 화학소재·부품 기술역량 강화를 위한 국가연구인프라(3N)에 지정되며 소부장 핵심기술 개발과 산업계 지원에 더욱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국가 주력산업에 필수적인 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EUV 레지스트 등 100대 핵심소재·부품의 대외의존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소재혁신선도프로젝트 총괄기관에도 선정되며 한층 더 우수한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그간의 범국가적인 화학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문제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핵심소재·부품 자체 조달의 근간이 되어야 할 국내 관련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역량이 기대만큼 빠르게 향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공급기업인 중소기업 생산 제품의 신뢰성 확보에 필요한 테스트베드 부재, 그리고 수요기업인 대기업 간의 협력기반이 미흡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에 따라 조금씩 낮아지던 핵심소재·부품의 수입의존도와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1년 화학소재·부품 기술의 국가적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해 화학연 내에 상생기술협력센터 구축을 결정했습니다. 화학연의 전문 R&D 역량을 기반으로 공급기업과 수요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지요.
Chapter 02
수요-공급기업 상생 이끄는 개방형 인프라
총 185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4개 층(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5,401m2 규모로 건설되고 있는 상생기술협력센터는 현재 외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내부 개방형 인프라의 구축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생형 연구공간, 소재부품 오픈랩, 스케일업 연구실, 가변형 커뮤니케이션 공간, 화상회의용 버츄얼랩, 전문가 컨설팅을 위한 기업자문실과 학술정보실 등 공급기업-수요기업-화학연 연구자들의 3자 협업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시설들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상생형 연구공간’은 상생기술협력센터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플랫폼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나의 물리적 연구공간 안에서 화학연 연구진이 기업들과 실시간으로 연구개발과 기술 사업화를 연계하는 목표 지향적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가 이뤄지게 되지요.
기대효과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화학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먼저 공급기업은 전문 연구기관과의 협력연구를 통한 연구개발 역량 내재화와 중장기적 사업전략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요기업으로서는 더욱 신뢰성 높은 공급처 확보와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지요. 이와 함께 새로운 기술혁신 플랫폼을 제공하는 화학연 역시 보유 원천기술과 핵심 노하우를 연계하여 기술사업화 성과를 창출하고, 이를 통한 연구개발 재투자의 선순환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개관이 다가오며 상생기술협력센터에 대한 국내 화학소재·부품 산업계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20여 곳 이상의 중소·중견·대기업이 관심을 표명해옴에 따라 지난 6월에는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도 성황리에 개최되었는데요. 화학소재·부품 상생기술협력센터 구축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최경선 중소기업지원실장은 “현재 여러 입주신청 기업들을 대상으로 모집유형과 센터 운영방안 등 맞춤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입주기업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는 물론 화학연의 기업성장지원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공급망과 수요처를 연계 발굴하여 기업과 함께 호흡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화학연은 이번 화학소재·부품 상생기술협력센터 구축을 계기로 국가전략기술 발전과 기술주권 확보의 선도자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새로운 기술혁신 인프라 조성을 통해 화학강국 실현이라는 고유 임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오는 12월 준공과 함께 모습을 드러낼 화학소재·부품 상생기술협력센터가 격화되는 세계 기술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협력과 상생을 견인하는 역동적인 혁신 운동장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