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너나들이
* 너나들이는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마음으로 빚어내는 도자기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던 흙덩어리가 무언가로 거듭납니다. 고양이, 펭귄, 찰리와 루시….
정성껏 만지고 또 매만지는 손길들 위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형체들을 보고 있자니
도자기를 ‘마음으로 빚는 그릇’이라고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실과 바늘처럼
일일 도예체험을 위해 화학연의 젊은 피 4명이 모였습니다. 이지훈 인턴연구원과 장은수 학생연구원은 정보융합신약연구센터 소속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인 약물동태학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체내의 약물 농도를 통해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등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첨단 장비들, 언제든 편하게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전문가들 속에서 이론과 실제를 골고루 익힐 수 있는 화학연의 연구환경에 이구동성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실과 바늘처럼 절친한 선후배이자 동료인 이들이 만들고 있는 백자 그릇의 캐릭터는 만화 ‘피너츠’의 찰리 브라운과 루시. 아웅다웅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던 두 사람의 모습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선택입니다.
또 다른 꿈을 위해
총무복지실의 이가은 행정원은 일전에 일반인들에게 연구소 시설을 개방하는 대덕연구단지 걷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 기회에 친환경 비닐봉투 개발 같은 뉴스를 통해 평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화학연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풍경, 말없이도 느껴지던 화학연 고유의 전통과 안정감은 그를 단박에 매료시켰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연구원에 몸담고 있는 이 행정원은 선배들의 도움 속에 요즘 연구지원 업무의 전문성을 쌓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화학연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룬 그에게는 요즘 또 다른 소박한 꿈이 생겼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아직은 여건이 안 됩니다. 생명을 돌보는 일이라 고민해봐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든 고양이 사료그릇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묘연이 찾아오지 않겠냐"며 웃습니다.
남극의 펭귄도
샘플을 안 보고도 쓱쓱 도자기 도안을 완성해가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던 오진호 박사후연구원. 그는 고효율 탈수소화 분야의 연구자로 학위 과정을 마친 뒤 보다 큰 규모에서 연구를 이어가길 원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탄소중립의 기반인 친환경 에너지원 연구개발이 한창이던 화학연은 최적의 일터였지요. 오 연구원은 현재 대용량 수소 저장·운송 기술인 LOHC(Liquid Organic Hydrogen Carrier)의 상용화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실험용 보호장구들이 더 덥고 불편하지만 지구를 살리는 연구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힘을 내곤 한다는데요. 그가 펭귄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기후변화로 고통 받는 펭귄과 북극곰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흙덩어리의 변신
밀고 두드리고 다듬고 그림을 그려넣는 사이, 보잘것없던 흙덩어리가 점차 쓸모를 갖춘 그릇으로 변신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투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건조와 초벌구이 뒤에 유약을 입히고 다시 녹는점에 가까운 뜨거운 열기를 견뎌야 비로소 매끈매끈한 윤기와 맑은 쇳소리의 도자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좌충우돌 혈기왕성하던 초년병이 산전수전 속에서 노련하고 원숙한 베테랑으로 성장해가는 모습과도 비슷한데요. 오늘 모인 네 사람 역시 화학연이란 가마 속에서 투명하고 영롱한 빛의 도자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