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화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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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와 아보가드로
글 |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과)
글 | 백성혜(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화학교육과)
나는 예술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심미감이라고 생각한다. 심미감(aesthetic sensiblity)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감성은 교육을 통해 발달하지만, 과학을 배우면서 심미감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아는 과학자 중에 심미감을 온몸으로 표현한 과학자는 아르키메데스다. 그는 원주율, 지레의 원리, 부력 등 현대에도 중요한 다양한 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공학자, 심지어 그를 철학자로 부르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를 화학자로 부르려 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과학 수업에서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배울 때였다. 물질의 고유한 성질 중 하나인 밀도는 물질의 부피와 질량을 알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읽기 코너에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이 순금인지 아닌지 밝히기 위해 목욕탕의 욕조에 들어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불규칙한 물체(왕관)의 부피를 측정하는 방법을 깨닫고 왕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뻐 “유레카!”하고 외치며 벌거벗고 길로 뛰어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천 년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큼 그 사건은 인상적이지만, 기원전 3세기에 일어난 이 사건을 200년이 지난 기원전 1세기에 비투르비우스가 기록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비투르비우스가 묘사한 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단원을 배우는 중학교 때에는 아르키메데스가 느낀 심미감을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밀도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데, 그저 양념으로 들어간 에피소드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내가 아르키메데스를 다시 만난 것은 쇠로 만든 배가 왜 물 위에 뜨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였다. 과학 교사들은 쇠의 밀도는 같기 때문에 이 문제를 부력으로 해결하였다. 쇠공보다 쇠로 만든 배에 부력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력 개념을 만든 과학자가 바로 아르키메데스이다. 그는 밀도 개념으로 왕관 문제를 해결한 화학자에서 부력을 발견한 물리학자로 바뀌었다. 그런데 “유체에 잠긴 물체의 부피에 해당하는 유체의 부피만큼 물체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부력의 개념에는 물체와 유체의 부피가 중요하다. 왕관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부력의 개념을 만들 때에도 아르키메데스는 물체의 부피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혹은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내 관심의 초점이 물체의 부피 측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내 관심의 마지막은 그의 묘비명이었다. 그의 묘비명은 단순한 세 도형을 합한 것인데, 원기둥 속에 꽉찬 구, 그리고 원뿔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이 도형의 부피비가 3:2:1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아마도 아르키메데스는 글자나 수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 도형을 보고, 심미감을 느끼도록 묘비명에 새긴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에 그 많은 업적을 제치고 단순한 세 도형의 부피비를 제시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키메데스는 물체의 부피에 관심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물체의 부피와 질량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화학자의 특성이 아닐까? 그가 불규칙한 물체의 부피 측정 방법을 모르다가 욕조 안에 잠긴 자신의 몸 부피만큼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방법을 찾았다는 비투르비우스의 해석은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르키메데스는 그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방법으로는 정확한 부피 측정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민한 것이다. 실제로 물속에 왕관과 같이 부피 큰 물체를 넣으면 표면장력 등의 문제로 물이 올라간 높이나 넘치는 양으로 부피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능한 한 좁은 관과 같은 메스실린더를 사용해야 하지만, 왕관의 크기를 고려하면 그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나는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가 발견한 것은 부력을 이용하면 정확한 부피 측정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부력도 물체의 부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발견한 것은 저울의 측정 도구인 지레를 물에 넣어서 부피 측정 도구로 바꾼 것이다. 만약 왕관이 순금이 아니라면, 질량이 순금과 같을 때 부피는 순금보다 크거나 작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속에서 균형이 깨져서 기울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물체가 물속에서 뜨는 정도가 그 물체의 부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착안하고 너무 기뻐서 “유레카”를 외치고 욕조를 뛰어 나온 것이 아닐까?
그가 물체의 부피에서 느끼는 심미감의 최정점은 역시 묘비명에 있는 도형의 부피비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원의 면적을 구하고 높이를 곱해서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기 위해 원의 면적을 구하는 방식에는 무시(ignorance)가 존재한다. 즉 원을 잘게 쪼개서 호를 거의 삼각형과 유사한 형태로 만든 다음 이를 삼각형 면적을 구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면서 남은 호의 면적을 무시한 것이다. 삼각형 면적은 1/2×밑면×높이인데, 높이는 원의 반지름으로 보고, 밑면은 1로 치면 1/2×r이 된다. 이러한 삼각형의 개수가 원의 지름인 2πr 만큼 있으니, 원의 면적은 1/2×r×2πr 이므로 πr2이 된다. 원기둥의 부피는 여기에 높이(h)를 곱하면 되는데, 묘비명의 원기둥 높이는 같은 지름을 공유하는 구와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h=2r이다. 따라서 원기둥 부피는 πr2×2r 이므로 2πr3이 된다. 여기서 내가 놀랐던 것은 원의 호와 삼각형이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삼각형 면적 구하는 방식으로 원의 면적을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놀람은 다음 부피를 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별 것도 아니다. 원뿔의 부피는 원기둥 부피의 1/3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원기둥이 아니라 직육면체를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사각뿔 3개를 합치면 직육면체가 된다. 그리고 직육면체가 점점 더 다각형이 되어가다가 원이 되어도 기둥과 뿔의 관계는 유지되므로 원기둥과 원뿔의 부피비는 3:1을 유지한다.
더욱 어려운 것은 구와 원뿔의 부피 관계인데, 원기둥의 단면적의 변화 비율을 인식해야 한다. 조금 사고를 단순화하기 위해 원기둥 안에 반지름을 높이로 하는 원뿔이 두 개 맞물려 있다고 가정하자. 원뿔의 부피는 밑면적×높이이므로, 작은 원뿔 2개나 큰 원뿔 하나나 부피는 동일하다. 높이가 원의 반지름인 한 원뿔의 경우만 살펴보자. 원뿔의 단면적이 넓어질수록 구의 단변적이 좁아지고, 원뿔 끝 쪽으로 이동할수록 구의 단면적은 커진다. 이 두 관계의 규칙성을 살펴보면 구의 단면적은 원기둥에서 원뿔의 단면적을 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단면적들을 합하여 전체 부피를 구성한다고 보았을 때 원기둥에서 원뿔의 부피를 빼면 구의 부피가 나온다. 그래서 원기둥의 부피가 2πr3이라면 구의 부피는 4/3πr3 이고, 원뿔의 부피는 2/3πr3이 된다. 이 도형의 부피 구하는 공식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단면적의 변화율로부터 전체 부피비를 구하는 과정에서 높이가 없는 단면적이 쌓여서 높이를 가진 물체의 부피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하학에서 창발이라고 부른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면이 되고, 면들이 모여 부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창발적 사고는 1980년에 복잡성 과학의 탄생과 함께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단백질 분자는 생명이 아니지만, 단백질이 모여 생명체가 구성된다. 개별 단백질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이 전체 구조(유기체)에 저절로 나타나게는 것이다. 개별 세포들은 독립적으로 생장과 소멸을 하지만, 세포의 개체는 시스템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창발적 사고의 예이다. 아담 스미스, 엥겔스, 다윈, 튜링, 프리고진 등 뛰어난 학자들이 다양한 학문에서 창발적 사고를 도입했다. 이러한 창발적 사고를 고대 아르키메데스가 기하학에 적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원의 면적을 구하면서 정확한 값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호를 삼각형으로 가정하는 대담함을 넘어서서 비례적 관계로 패턴을 찾으려고 시도한 것 역시 놀랍다. 그러한 시도의 정점에서 그는 묘비명에 제시한 도형들 사이의 부피비 관계를 찾고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심미감을 느꼈을 것이다.
화학에서 이러한 창발적 사고의 사례를 든다면 나는 아보가드로를 들고 싶다. 그가 일정한 기체의 부피 안에는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같은 입자수가 있다는 가정을 하였을 때, 그 역시 아르키메데스처럼 부피의 관계에 관심을 두었을 뿐 아니라, 입자 개개의 특성을 무시하고 기체 전체의 시스템적 사고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입자 자체의 부피는 무시하고, 이를 점으로 가정함으로써 전체 기체 부피는 오로지 기체 입자의 개수에만 의존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점들이 모여 부피가 형성되며, 이 부피는 규칙성을 가진다는 기하학적 창발을 가정하였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아보가드로의 묘비명은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아르키메데스처럼 자신이 만든 생각에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묘비명에 어떤 글이나 그림을 새기고 싶은가? 아르키메데스처럼 당신은 세상을 살면서 느꼈던 심미감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가?
그가 물체의 부피에서 느끼는 심미감의 최정점은 역시 묘비명에 있는 도형의 부피비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원의 면적을 구하고 높이를 곱해서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기 위해 원의 면적을 구하는 방식에는 무시(ignorance)가 존재한다. 즉 원을 잘게 쪼개서 호를 거의 삼각형과 유사한 형태로 만든 다음 이를 삼각형 면적을 구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면서 남은 호의 면적을 무시한 것이다. 삼각형 면적은 1/2×밑면×높이인데, 높이는 원의 반지름으로 보고, 밑면은 1로 치면 1/2×r이 된다. 이러한 삼각형의 개수가 원의 지름인 2πr 만큼 있으니, 원의 면적은 1/2×r×2πr 이므로 πr2이 된다. 원기둥의 부피는 여기에 높이(h)를 곱하면 되는데, 묘비명의 원기둥 높이는 같은 지름을 공유하는 구와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h=2r이다. 따라서 원기둥 부피는 πr2×2r 이므로 2πr3이 된다. 여기서 내가 놀랐던 것은 원의 호와 삼각형이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삼각형 면적 구하는 방식으로 원의 면적을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놀람은 다음 부피를 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별 것도 아니다. 원뿔의 부피는 원기둥 부피의 1/3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원기둥이 아니라 직육면체를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사각뿔 3개를 합치면 직육면체가 된다. 그리고 직육면체가 점점 더 다각형이 되어가다가 원이 되어도 기둥과 뿔의 관계는 유지되므로 원기둥과 원뿔의 부피비는 3:1을 유지한다.
더욱 어려운 것은 구와 원뿔의 부피 관계인데, 원기둥의 단면적의 변화 비율을 인식해야 한다. 조금 사고를 단순화하기 위해 원기둥 안에 반지름을 높이로 하는 원뿔이 두 개 맞물려 있다고 가정하자. 원뿔의 부피는 밑면적×높이이므로, 작은 원뿔 2개나 큰 원뿔 하나나 부피는 동일하다. 높이가 원의 반지름인 한 원뿔의 경우만 살펴보자. 원뿔의 단면적이 넓어질수록 구의 단변적이 좁아지고, 원뿔 끝 쪽으로 이동할수록 구의 단면적은 커진다. 이 두 관계의 규칙성을 살펴보면 구의 단면적은 원기둥에서 원뿔의 단면적을 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단면적들을 합하여 전체 부피를 구성한다고 보았을 때 원기둥 에서 원뿔의 부피를 빼면 구의 부피가 나온다. 그래서 원기둥의 부피가 2πr3이라면 구의 부피는 4/3πr3 이고, 원뿔의 부피는 2/3πr3이 된다. 이 도형의 부피 구하는 공식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단면적의 변화율로부터 전체 부피비를 구하는 과정에서 높이가 없는 단면적이 쌓여서 높이를 가진 물체의 부피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하학에서 창발이라고 부른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면이 되고, 면들이 모여 부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창발적 사고는 1980년에 복잡성 과학의 탄생과 함께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단백질 분자는 생명이 아니지만, 단백질이 모여 생명체가 구성된다. 개별 단백질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이 전체 구조(유기체)에 저절로 나타나게는 것이다. 개별 세포들은 독립적으로 생장과 소멸을 하지만, 세포의 개체는 시스템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창발적 사고의 예이다. 아담 스미스, 엥겔스, 다윈, 튜링, 프리고진 등 뛰어난 학자들이 다양한 학문에서 창발적 사고를 도입했다. 이러한 창발적 사고를 고대 아르키메데스가 기하학에 적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원의 면적을 구하면서 정확한 값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호를 삼각형으로 가정하는 대담함을 넘어서서 비례적 관계로 패턴을 찾으려고 시도한 것 역시 놀랍다. 그러한 시도의 정점에서 그는 묘비명에 제시한 도형들 사이의 부피비 관계를 찾고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심미감을 느꼈을 것이다.
화학에서 이러한 창발적 사고의 사례를 든다면 나는 아보가드로를 들고 싶다. 그가 일정한 기체의 부피 안에는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같은 입자수가 있다는 가정을 하였을 때, 그 역시 아르키메데스처럼 부피의 관계에 관심을 두었을 뿐 아니라, 입자 개개의 특성을 무시하고 기체 전체의 시스템적 사고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입자 자체의 부피는 무시하고, 이를 점으로 가정함으로써 전체 기체 부피는 오로지 기체 입자의 개수에만 의존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점들이 모여 부피가 형성되며, 이 부피는 규칙성을 가진다는 기하학적 창발을 가정하였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아보가드로의 묘비명은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아르키메데스처럼 자신이 만든 생각에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묘비명에 어떤 글이나 그림을 새기고 싶은가? 아르키메데스처럼 당신은 세상을 살면서 느꼈던 심미감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