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팩트체크
방향제도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
글 |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과)
악취를 제거해준다는 방향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실내의 공기나 옷에서 나는 퀴퀴한 악취를 상큼하게 바꿔주는 방향제가 우리의 생활환경을 크게 개선시켜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방향제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악취를 완전히 제거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향제를 함부로 사용하다가 엉뚱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방향제의 기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실내 공간이 좁은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방향제는 특히 경계해야 한다. 더운 여름철에 자동차의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방향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환기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
냄새가 건강을 지켜준다
코의 점막에 있는 후각 세포를 통해서 느끼는 냄새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질에서 비롯된다. 특별한 구조의 분자가 코의 후각상피조직에 있는 후각 수용체 세포에 결합되면서 생성된 신경 신호가 뇌에 전달되어 냄새를 인식하게 된다. 사람의 코에는 대략 1000 종류의 후각 수용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기억하는 냄새의 종류는 대략 1만 가지 정도라고 한다. 미국의 리차드 액셀과 린다 버크는 우리가 냄새를 인식하는 화학적 과정을 밝혀낸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호흡을 통해서 흡입된 유해물질이 다시 호흡기를 통해서 배출되지 못하면 몸속으로 흡수되거나 폐포에 달라붙어서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냄새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중에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냄새로 유해물질을 가려내는 기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되어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벤젠의 냄새를 좋은 냄새로 인식하기도 했다. 벤젠을 ‘방향족 화합물’로 분류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특정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불쾌하게 느끼는 악취 성분 중에는 우리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달걀이 썩는 것과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암모니아나 황화수소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의 맹독성 물질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밀폐된 작업장에서 발생한 중독 사고로 사망한 316명 중에서 황화수소에 의한 사망자가 80%나 된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악취를 애써 참고 견디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악취가 심한 곳에서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방독면을 쓰거나 철저한 환기로 악취를 제거해야 한다.
냄새를 위험 예방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메탄이 주성분인 도시가스나 프로판과 부탄이 주성분인 액화석유가스(LPG)가 실내로 누출되면 심각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도시가스나 LPG에는 역겨운 냄새가 심한 황 화합물을 부취제로 혼합해서 공급한다. 도시가스나 LPG의 역한 냄새는 매우 중요한 위험 신호인 셈이다.
좋은 냄새도 경계해야
악취는 대부분 실내에 곰팡이가 피거나 박테리아에 의한 부패가 진행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물론 악취가 외부에서 유입될 수도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불쾌감은 더욱 심각해진다. 심한 악취가 단순히 삶의 질을 떨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곰팡이나 부패에서 발생하는 악취는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실내의 악취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서 완벽하게 해결해야만 한다.
방향제는 휘발성 방향(芳香) 성분을 이용하는 제품이다. 식물이나 동물에서 채취한 값비싼 천연향도 있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합성하는 값싼 합성향도 많이 사용한다. 방향제는 방향(芳香) 성분을 휘발성 용매에 섞어놓은 제품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증발 현상을 이용하기도 하고, 압축 기체를 이용해서 에어로졸로 분무시키는 제품도 있다. 전통 의례나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향초(香草)와 향(香)은 연기에 섞여 나오는 방향 성분을 활용하는 방향제다. 화장품으로 분류되는 향수(香水)도 방향 성분을 에탄올과 같은 용매에 녹인 방향제다.
방향제는 환기가 쉽지 않은 실내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악취 문제를 해결해주는 유용한 제품이다. 그러나 방향제나 향초가 실내의 나쁜 냄새를 완전히 해결해주는 기적의 제품은 아니다. 단순히 강한 향기를 이용해서 후각을 마비시켜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더 이상 나쁜 냄새를 인식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줄 뿐이다. 악취의 원인이 되는 물질은 여전히 실내에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방향 성분을 이용한 아로마 요법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식물의 꽃이나 열매에서 방출되는 아로마가 건강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특히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등의 심리적 효능을 확인했다는 학술논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아로마 요법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의약품이 그렇듯이 아로마의 경우에도 개인적인 취향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효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체질적으로 아로마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방향제의 냄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냄새에 대한 취향은 성장 과정에서의 학습이나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청국장 냄새를 구수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향기 물질의 농도가 너무 짙어지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향제에 포함된 향기 물질이나 용매에 대해 생리적으로 심각한 거부감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화학물질에 대해 면역 체계가 필요 이상의 거부감을 나타내는 화학물질과민증도 있다. 그런 환자들이 경험하는 고통이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작업장의 관리자가 진한 향수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도 있다.
천연향과 합성향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바나나 냄새가 나는 방향제나 식품첨가제로 많이 쓰는 아세트산 아이소아밀은 실제로 바나나에도 들어있는 천연물이다. 화학적으로 합성했다고 해서 독성을 나타낸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합성향의 독성이 더 강하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악취의 원인을 확실하게 제거하거나 지속적으로 환기를 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향초나 방향제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제한적이고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나마도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사용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특히 호흡기·눈·피부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향초를 장시간 켜두거나, 방향제를 밀폐된 실내에 지속적으로 방출하는 자동 분무장치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향초나 방향제에 의한 공기 오염도 경계해야 한다.
향초의 경우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향초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파라핀이 불완전 연소돼 발생하는 미세·초미세 먼지의 양이 적지 않다. 특히 향초의 심지가 지나치게 길어지면 눈에 보일 정도로 검은 그을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파라핀이나 방향 성분이 높은 온도에서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독성 오염 물질도 있다.
향초의 경우에는 화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도 없는 실내에 향초를 켜둔 상태로 장시간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향초에 사용하는 유리나 플라스틱 재질의 일회용 싸구려 용기는 결코 믿을 것이 될 수 없다. 향초 불꽃의 열에 의해 쉽게 깨지거나 심하게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가 깨지거나, 용기에 균열이 생겨서 열에 녹은 파라핀이 외부로 흘러나오면 심각한 화재로 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