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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코팅의 세계

작성자전체관리자  조회수2,819 등록일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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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바로 알기

코팅의 세계


백제의 단아한 미의식을 잘 보여주는 부여의 관광명소 궁남지. 이곳은 여름철 넓은 저수지 곳곳에

연꽃이 필 때면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비가 온 뒤에는 연잎 가운데 모여 이리저리 옥구슬마냥 또르르르 굴러다니는 물방울도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인데요. 이렇게 연잎이 젖지 않는 것은 표면의 기름성분과 미세돌기가

만들어내는 발수성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을 밀어내는 천연의 코팅제 덕분에 연꽃은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매년 여름 풍성한 잎과 꽃을 피웁니다.

연꽃

단순 장식에서 스마트 기능까지

재료의 겉면에 얇은 막을 입히는 코팅(coating)은 인류의 타고난 미적 감각과 함께 상승 발전해왔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처럼 중요한 제례 도구와 건축물들을 장식하다가 점차 생각지도 못한 장점들에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아름다운 색상이나 매끄러운 광택뿐만 아니라 부식과 마모를 막는 기능들이 더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대로 전해지는 경험 위에서 조금씩 종류와 조성을 달리하며 이어지던 코팅 기술은 과학기술, 특히 표면과학(surface science)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물체 내부의 원자는 이쪽저쪽 위 아래로 다른 원자들과 손을 맞잡고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결합을 합니다. 하지만 물체의 표면에 있는 원자는 결합할 외부의 원자가 없기 때문에 늘 한쪽이 허전합니다. 그래서 내부의 원자들과 다른 원자배열을 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물체의 내부나 전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특성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지요.

물체의 가장 바깥쪽에서 나타나는 이런 독특하고 다양한 물리·화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표면과학의 발전은 단순히 바르고 칠하던 코팅을 현대문명 전반의 핵심요소로 끌어올렸습니다. 금속이나 목재, 석재 등의 외부를 장식하고 강화하는 데서 나아가 섬유, 유리, 플라스틱 생활용품부터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로켓엔진 같은 첨단산업까지 인류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도구와 제품에 내열성·내식성·내마모성·전도성·접착성·윤활성·광반사성·자기특성 같은 고기능들을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채소나 과일, 쌀과 같은 곡물의 표면에도 코팅제를 입혀 부패 방지와 신선도 유지를 꾀하고 있는데요. 코팅이 단순한 기능 개선을 넘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화학연에서 연구가 한창인 ‘스마트 코팅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도 경화되는 에너지 저감형 저온경화 코팅소재, 스크래치나 균열을 스스로 메우는 자기치유 코팅소재, 차량 충돌을 예방하는 라이다 반사 코팅소재 등이 그것입니다.

테프론과 대통령

계란후라이

코팅 기술의 발전상을 일상 가까이에서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제품들은 스마트폰과 프라이팬입니다. 작고 예민한 수백 가지의 부품과 소자가 집적되는 스마트폰은 어느 하나의 고장만으로도 제품 전체를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투명한 액정과 보안, 결제수단으로 대중화된 지문인식 버튼은 긁힘이나 지문 같은 오염에도 강해야 하지요. 이런 스마트폰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지켜주는 것이 기체를 매개체로 한 화학증착법과 물리증착법 등의 첨단 코팅 기술입니다. 21세기 정보통신 혁명의 대표적인 일등 공신들이지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oly Tetra Fluoro Ethylene, PTFE) 역시 코팅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줄여서 ‘테프론’이란 상품명으로 유명한 이 불소수지는 1938년 듀퐁사의 연구원이 냉매인 프레온 가스를 만들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질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난 내구성과 함께 반응성과 인화성이 없는 안전함이 알려지며 주로 화학물질 저장용기, 베어링·캐스킷 등의 공업용구, 시약병 같은 실험도구 등에 사용되다가 유럽의 조리기구 회사를 통해 코팅 프라이팬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테프론은 특유의 내구성과 윤활성 때문에 사회 이슈를 빗대는 시사용어로도 종종 사용됐습니다. 어떤 잡음과 실책에도 아무런 정치적 타격을 받지 않아 ‘테프론 대통령’으로 불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후 테프론은 미국 정치계의 보통명사가 되었는데요.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테프론 특성’의 정치인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느 방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런데 천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얼굴에 반창고 하나 붙일 필요도 엇이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당당히 걸어 나올 수 있는 사람.”

아는 것을 안다고 하라

음식이 잘 눌러 붙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남아도 미지근한 물과 스펀지로 가볍게 씻어낼 수 있는 테프론 코팅 프라이팬의 등장은 계란 한 개만 부쳐 먹어도 흔적을 지우는 데 많은 수고를 해야 했던 주방에 일대 혁신을 불러옵니다. 요즘에는 프라이팬이라고 하면 당연히 코팅팬을 떠올릴 만큼 대중화되었지요. 주철이나 알루미늄 냄비보다 기름을 적게 사용해도 되니 지방 과다섭취를 막는 건강상의 이점도 추가됐습니다. 하지만 설거지를 심하게 하면 코팅이 벗겨져 중금속이 나온다거나, 음식물 없이 가열하면 코팅이 타면서 암을 유발하는 증기가 발생한다는 소문이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막연한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무지(無知)’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전염성도 강해 역사 속 많은 이들이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영국 시인 브라우닝)“ “차라리 모르는 게 잘못 알고 있는 것보다 낫다”(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공자) 같은 경계의 말들을 남기고 있는데요. 프라이팬 코팅의 유해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팅이 타면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에 관한 소문은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연구원의 검사를 통해 기준치보다 5배가 넘게 나와도 인체에는 영향이 없는 밝혀졌습니다.

바닥 코팅이 벗겨지면 중금속이 나온다는 우려 역시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실험을 통해 근거가 희박한 주장임이 드러났는데요. 코팅의 손상 정도와 상관없이 금속 성분은 거의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래도 불안하다면 좀 더 자주 코팅프라이팬을 교체하는 것이 도음이 될 것이라 조언했는데요. 기름으로 재료를 조리하는 서구에서는 부드러운 수세미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갖은 양념과 찰기가 있는 곡물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 식문화에서는 금속 실이 포함된 수세미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안정한 코팅이라도 흠집이 나면서 벗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