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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캐리 멀리스의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작성자전체관리자  조회수7,299 등록일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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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의 화학세상

캐리 멀리스의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유레카(Eureka)!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유레카 이후에도 또 다른 수 많은 유레카는 계속된다. 유레카는 매우 평범한 사건이나 일상에서 갑자기 떠오른 우연한 생각이 발견 혹은 발명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던지는 외마디 비명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모든 연구자들은 연구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고민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사건 혹은 사물에서 자신의 연구 고민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기쁨의 순간을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발명하여 노벨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Kary Mullis, 1944-2019) 역시 애인과 드라이브 데이트를 즐기던 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게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에도 활용되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다. 결국 그 반응을 예전보다 쉽고 편리하게 고안한 건 캐리 멀리스의 유레카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극소량의 DNA만 있으면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양의 DNA를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범죄수사, 유전자 검사는 물론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검출과 진단에도 활용된다.

중합효소 연쇄반응

중합효소 연쇄반응

중합효소 연쇄반응은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각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적합한 온도가 각각 다르다. 첫 번째는 두 가닥 DNA를 한 가닥 DNA로 분리하는 단계, 두 번째는 한 가닥 DNA에서 두 가닥 DNA를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 세 번째는 한 가닥 DNA에 대응이 되는 염기 부품이 두 가닥 DNA로 만들어 완성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마다 적합한 온도가 다르며, 매우 높은 온도를 거치는 단계도 있다. 따라서 고온과 온도 변화에 기능을 잃지 않고 DNA를 복제할 수 있는 효소를 사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적은 양의 DNA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DNA를 얻으려면 온도 변화에도 안정한 효소의 선택은 전체 과정의 효용성을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3단계를 1회로 하여 n회 반복하면, DNA의 개수는 2n으로 증가한다. 예를 들어, DNA 1개로 시작해도 반응을 30회 반복하면 10억개 이상의 DNA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완성하는 시간도 약 45분~90분 정도 밖에 안 걸린다.

첫 번째 단계는 두 가닥으로 이루어진 DNA를 분리하여 한 가닥 DNA 2개로 만드는 것이다. DNA는 4종류의 염기(ATGC)가 수소 결합 2개(A-T) 혹은 3개(G-C)로 연결되어 있고, 대응되는 염기 쌍에 맞게 두 가닥이 서로 꼬인 나선형 밧줄 구조를 하고 있다. 염기 쌍의 종류에 따라 수소 결합의 수가 달라서 두 종류의 수소결합이 부서지는 온도도 다르다. 그런데 온도를 90도 이상으로 올리면 DNA의 모든 수소결합이 끊어지고, 두 가닥 DNA는 풀려서 한 가닥 DNA 2개로 나뉜다.

두 번째 단계는 한 가닥 DNA들을 두 가닥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곳을 정해 주는 일이다. 중합효소(polymerase)는 단지 새로운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는 부품을 연결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중합효소가 일을 시작하는 위치를 미리 정해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클레오티드는 염기 1개(A, T, G, C 중 하나), 당(ribose) 1개, 인산(phosphate) 1개로 구성된 분자로, DNA를 조립하는 부품이다. 즉 분자 3개가 결합된 단위체가 마치 1개의 부품으로 사용된다. 프라이머(primer)는 길이가 짧은 한 가닥의 RNA 혹은 DNA의 조각으로, 한 가닥으로 나뉜 DNA의 특정 위치에 결합되는 특성이 있다. 약 20개 전후의 뉴클레오티드로 구성된 프라이머를 사용하며, 그것의 구성 성분과 전체 길이의 특성을 고려하여 선정한다. 보통 최적의 프라이머를 실험실에서 합성해서 사용하며, 그것은 한 가닥 DNA의 특정 위치에 결합이 된다. 이때 적합한 온도는 약 40~60도이다. 프라이머가 한 가닥 DNA에 대응되는 염기 서열에 맞추어 특정 위치를 찾아서 결합이 완성되면 그 후에 중합효소는 한 가닥 DNA를 두 가닥 DNA로 조립해 나간다.

세 번째 단계는 중합효소가 염기결합 규칙(A-T, G-C)에 따라 프라이머에 이어서 뉴클레오티드 부품들을 조립하고, 결국에는 두 가닥 DNA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 때 적합한 온도는 약 75~80도이다. 중합효소는 뉴클레오티드 부품을 두 가닥 DNA로 완성시키는 속도는 1초에 약 150개 부품을 연결할 정도로 매우 빠르다. 결국 중합효소는 물론 참여하는 부품 분자들, 프라이머는 DNA를 2배로 늘릴 때 마다 3차례 온도 변화를 겪는다. 총 세 단계로 이루어진 모든 과정을 약 20~30회 반복해서 분석에 필요한 양의 DNA를 얻는다. 그러므로 온도 변화에도 구조와 기능을 잃지 않는 중합효소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에 DNA의 수가 2배로 증가할 때 마다 새로운 효소를 첨가해야 된다면 매우 번거로운 일이고, 더구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한편, 중합효소 연쇄반응은 DNA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들은 DNA는 없고 RNA만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침투하여 자신이 가진 RNA와 역전사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이용하여 숙주 안에서 DNA를 만들고 번식을 한다. 바이러스는 역전사효소를 이용하여 자신의 RNA로부터 한 가닥 DNA를 만들고, 그것을 DNA 중합효소는 두 가닥 DNA(상보DNA(complementary DNA)로 완성한다. 바이러스가 자손을 퍼뜨리는 방법을 이용하면 바이러스의 DNA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이용하여 바이러스의 상보 DNA를 대량으로 만들어 바이러스의 진단, 분석은 물론 치료제 개발에 이용한다.

캐리 멀리스

캐리 멀리스(Kary Mullis) / 출처 : www.nobelprize.org

중합효소 연쇄반응에 사용되는 택(Taq)이라고 부르는 DNA 중합효소는 열에 안정하여, 90도가 넘는 첫 번째 단계의 온도 조건에서도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 기능이 유지된다. 택(Taq) 이전에 사용했던 중합효소들은 첫 번째 단계의 높은 온도에서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매번 중합효소를 새로 첨가해야 했고, 그런 과정은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자동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Taq 효소는 1976년에 미국 신시네티 대학의 교수 존 트렐라(John Trela)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했고, 1989년에 <사이언스> 저널이 올해의 분자로 선정했다. 그 효소를 처음 발견한 생물학자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다. 멀리스는 택(Taq) 효소를 이용한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발명한 공로로, DNA 위치 유도(site directed) 돌연변이를 연구한 캐나다 과학자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와 함께 199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만약에 존 트렐라 교수가 살아 있었다면 중합효소 연쇄반응의 발명에 기여한 점이 인정되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지 않았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원하는 DNA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중합효소 연쇄반응은 범죄 수사, 친자 확인 등은 물론 DNA를 이용하는 새로운 과학 세상을 열어가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미 발표된 논문과 재료를 자기 연구에 적합하게 적용할 수 있었던 멀리스의 뛰어난 능력과 그의 유레카는 세상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글 | 여인형 동국대 화학과 명예교수

현재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삶은 화학물질과의 소통이다’를 강의하고 있다. 동국대 화학과 교수로 31년간 재직했으며, 분석화학 및 전기화학을 가르쳤다. 네이버 ‘화학산책’에 기고한 다양한 글들(총 조회수 1200만회 이상)과 눈높이 강연(학생 및 일반인 대상 약 130회 이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화학 상식 및 과학문화가 정착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퀴리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 2.0>, <공기로 빵을 만든다고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