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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과도한 공포

작성자  조회수843 등록일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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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스토리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과도한 공포

 

 

미세플라스틱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언론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이 깨지고 부서져서 만들어진 미세플라스틱이 강·호수·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소식은 2017년부터 알려진 낡은 구문(舊聞)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준이 달라졌다. 우리가 직접 마시기도 하는 수돗물은 물론 생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플라스틱도 있고, 설상가상으로 사망한 사람의 뇌에서 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논문이 발표된다는 보도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화학 혐오증(chemophobia)에 떨고 있는 소비자의 입장이 몹시 난처하다. 미세플라스틱의 잠재적 위험을 무작정 외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비자가 직접 감당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도 없다. 누구나 휴대할 수 있는 ‘검출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비닐·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를 퇴출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Chapter 01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소비자

 

 

우리가 버린 폐(廢)플라스틱이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태평양에 떠다니는 거대한 폐플라스틱 ‘섬’이 그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2015년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해양생물학 전공의 대학원 학생에 의해서 발견된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의 참혹한 유튜브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흔히 매립(埋立)의 대안으로 알려진 소각(燒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온실가스(이산화탄소)와 함께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유해가스가 대량으로 배출된다. 가정과 사무실에서 애써 분리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시멘트 공장이나 발전소의 연료로 재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국제 사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폐플라스틱이 자연 상태에서 깨지고 부서져서 만들어지는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오염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크기가 5밀리미터보다 작은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의 부작용은 단순히 우리의 생활환경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생활하는 지역의 흙·물·공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모자라 가축이나 농작물의 조직까지 파고들어 간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문제다. 상황은 몹시 심각하다. 우리가 처음 사용한 합성 플라스틱은 1907년에 개발된 베이클라이트였다. 고작 한 세기가 지났는데 이미 지구는 온통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어 버렸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이 우리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가 도무지 분명치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언론과 인터넷에는 미세플라스틱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비법’(秘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확인된 기술은 절대 아니다. 어설프게 관심을 가질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체가 불확실한 엉터리 전문가와 기업이 쏟아내는 어설프고 황당한 비법을 무작정 믿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소비자는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묶여버린 셈이다.

 

 

Chapter 02

'미세플라스틱'과 '나노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언론 보도의 핵심은 입자의 수(數)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연구에서는 플라스틱병에 들어있는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연간 9만 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연간 약 40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추정했다. 해양수산부가 2017년 우리나라 연안의 바닷물에서 확인한 미세플라스틱은 리터당 평균 6.6개였다.

 

해산물 중에서 문어·오징어·낙지·조개 등의 연체류와 게·새우 등의 갑각류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영국 헐요크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오징어·홍합·굴에서는 그램당 최대 10.5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갑각류에서는 그램당 최대 8.6개가 검출된다. 그램당 최대 2.9개가 확인된 어류보다 연체류·갑각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더 많이 검출되는 것은 바다 밑의 모래에서 먹이를 걸러 먹는 습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해 노르웨이 과학기술대와 중국 난카이대 등의 공동연구팀이 생수 1리터에 1660억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분석한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이다. 크기가 5밀리미터인 미세플라스틱 입자 하나가 부서지면 무려 1억2500만 개의 나노플라스틱이 만들어진다. 미세플라스틱의 크기가 나노플라스틱보다 500배나 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플라스틱의 개수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세플라스틱의 화학적 정체도 간단치 않다. 당연히 인체에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생리적 부작용도 미세플라스틱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일 수밖에 없다. 미세플라스틱이라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겁을 낼 이유는 없다. 대부분의 합성 플라스틱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하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커서 불안정한 합성 플라스틱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의 경우에는 그런 사실이 우리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미세·나노플라스틱이 인체에 흡수되더라도 심각한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미세·나노플라스틱도 발암물질의 경우처럼 장기간에 걸처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지 않기 위해서 야단법석을 떨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독성학·역학(疫學)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물·공기·식품에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 중에서 크기가 15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입자는 호흡기·소화기의 상피세포의 포식작용을 통해 우리 몸으로 흡수될 수 있다. 심지어 나노플라스틱의 경우에는 혈액뇌장벽(Blood Brain Barrier)를 통과해서 뇌 조직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으로도 추정하고 있다. 몸속으로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이 염증·괴사(壞死)를 일으킬 수도 있고, 폐 기능 저하와 기침·호흡곤란의 증상이 일으킬 수도 있다. 심지어 심뇌혈관계·내분비계에 장기적으로 산화(酸化) 손상 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세·나노플라스틱이 우리에게 반가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세플라스틱이 당장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식수·식품에 들어있는 크기가 15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미세플라스틱이 환경·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부작용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는 것이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확실한 입장이다. 그러나 미세플라스틱의 크기를 측정하는 표준적인 기술이 필요하고, 담수에서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이나 처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더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이 확인되기까지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우려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무분별한 황색언론의 호들갑이나 비윤리적인 기업의 요란한 노이즈 마케팅은 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